엄마가 행복하다면 됐어!
“아휴~ 엄마, 또 콜라야!”
콜라를 마시던 엄마가 딸의 말에 흠칫 놀란다.
“아…… 이거…… 이것만 마시고 이젠 다시 안 마실게……”
“엄마! 지난번에도 이런 얘기했잖아!”
“그래, 그랬나…… 이것만 마시고…… 샀으니 어쩌니……”
“진짜다! 이번에는 진짜야, 엄마!”
“알았어!”
“약속해!”하며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했다.
다시는 콜라를 안 마시기로...
며칠이 지났을까…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또 몰래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다.
“어…… 내가 산 것 아니야! 저 아랫집 여자가 사다 주고 갔어.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마시고 있는 거야.”
엄마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딸인 내가 거짓말인 줄 뻔히 알고 있는데...
“어휴~ 엄마 정말 왜 그래? 당뇨까지 있으면서 자꾸 콜라를 마시면 어떡해!”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엄마는 목소리 높여 외치듯이 다짐을 해 보인다.
“진짜! 진짜! 이것만 마시고 안 마실게!”
“어휴!”
화가 난 나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아, 진짜 왜 저러시지! 정말!’
누워서 씩씩거리다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거실에 나와보니 탁자 위에 콜라병과 콜라가 담긴 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엄마 방으로 가 보았다.
엄마도 화가 났는지 벽을 보고 누워 잠이 든 것 같았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늘 침대에서 벽을 향해 누워 있곤 했다.
그 짠한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또 울컥했다.
눈물이 나오기 전에 엄마 방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예민한 엄마, 어느새 알아차리곤 뒤돌아 나를 본다.
“엄마, 나 때문에 깼네!”
“아냐... 일어나야지...”
“엄마, 아까 화내서 미안해요! 엄마 건강 해칠까 봐 그랬지. 미안해, 엄마!”
“아냐... 네 마음 다 알지! 다신 콜라 안 먹을게, 미안하다!”
“아냐, 엄마. 내가 더 미안하지.”
“……”
“근데, 엄마. 건강 위해서 정말 콜라 좀 먹지 마요!”
“알았어! 다신 안 먹을게.”
정말 엄마 말을 믿었다.
한동안 집에서는 콜라 마시는 엄마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왠 걸...
어느 날, 마트 앞을 지나가다가 그 안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엄마가 내 두 눈에 포착되고 말았다.
딸 몰래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마치 범죄 현장을 습격하듯이 마트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엄마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마트 주인아주머니에게 눈치를 주더니,
“여기 여 사장님이 오랜만이라고 주셨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있는 거야!”
마트 주인아주머니도 엄마에게 눈길 한번 살짝 주더니 이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분명 거짓말이었다.
여자의 예민한 촉이 발동한 것이다.
“맞아요, 내가 드렸어요! 하도 오랜만에 오셔서...”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상황에서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못 이기는 척 얼버무리며 나는 조용히 마트를 빠져나왔다.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말하기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엄마도 내 눈치만 보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답답한 공기 속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이루었다.
다음 날,
마트 앞을 지나가는데 마트 주인아주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가게 안에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의자에 앉으라 권하며 넌지시 물었다.
“할머니가 콜라를 워낙 좋아하시나 봐요.”
“네, 당뇨가 있어서 드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잘 안 되네요.”
“그냥, 들 게 두세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따님이 못 마시게 한다고 가끔 여기다 놓고 드세요.”
어머나, 이건 또 무슨 말!!!
정말, 살다 살다 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싶었다.
기가 찼다.
“정말요?”
“네에. 그냥 편하게 들 게 하세요.”
마트 아주머니는 마치 엄마를 대변하듯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에 한숨이 잔뜩 실려 터덜터덜... 너덜너덜...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콜라가 그렇게 좋을까???’
‘그냥 드시게 두는 게 더 나을까???’
‘그럼, 당뇨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로 가득했다.
‘당뇨에 콜라가 그렇게 안 좋다는데…’
‘어쩌지……’
생각이 왔다 갔다 복작복작 복작복작...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콜라를 못 마시게 한들 엄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내가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엄마가 행복하다면 된 거야!’
‘이제 더 이상 콜라 갖고 엄마와 다투지 말자!’
이런 결론에 이르자 나는 이제 그만 그놈의 콜라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내 손으로 직접 콜라를 사다 주면서 ‘엄마, 이제 콜라 마음대로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까진 못하겠지만, 그냥 눈만 찔끔 감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 날이후로 엄마도 몰래 콜라 마시는 것에서 벗어났다.
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콜라를 마셨다.
딸의 잔소리가 없으니 마음 편안히 자유를 누리며 마시는 콜라,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래, 엄마가 좋으면 된 거다!’라는 생각을 하며 콜라를 먹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콜라가 그렇게 맛있어요?”
“맛있지!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고 맛있지!”
“그래도 조금만 드세요.”
“그럼, 많이 안 마셔! 걱정 마!”
콜라를 마시는 엄마의 표정이 마치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먹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너무 행복해 보였다.
‘엄마가 좋다니 나도 좋네!’
‘진작에 그럴걸...!’
더 이상 엄마는 마트에 콜라를 숨겨두고 먹지 않았다.
딸인 내 앞에서 콜라를 당당하게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
나도 더 이상 엄마와 씨름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 표지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