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 풀다 싸다 풀다 ……
‘어? 분명 냉장고 야채 칸에 애호박이 있었는데…’
어제까지 냉장고에서 보이던 애호박이 갑자기 안 보인다.
순간 엄마가 또 노인정에 가져갔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 찬거리로 야채들을 사놓으면 슬며시 그것들을 노인정에 가져가곤 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모르는 척하면서 슬며시 떠 보았다.
“엄마! 냉장고에 있던 애호박 어디 갔어요?”
“……”
엄마는 ‘나는 아닌데…’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순간 직감했다.
“엄마! 오늘 저녁에 된장찌개에 넣으려고 사다 놓은 건데…”
참았어야 했는데 ㅠㅠㅠ...
그만 또 짜증 섞인 말로 툭 내뱉고 말았다.
그제야 엄마는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말을 흐렸다.
“그거… 그렇잖아도… 노인정에 가져가서… 쓸 일이 없는 줄 알았지…”
마치 죄인인 양 고개를 푹 숙이고 숨죽여 말하는 엄마에게 순간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 쓸 일이 왜 없어요?”
“……”
“엄마, 왜 자꾸 그러세요! 돈도 없는데…”
“……”
아,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애호박 하나로 엄마는 마치 벌 받는 아이처럼 딸의 눈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아무 미동도 없이 숨죽여 서 있을 뿐이었다.
애호박이 뭐라고...
.
.
.
잠시 적막이 흐른 뒤, 엄마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사다 놓으면 되잖아!”
무안한 건지, 화가 난 건지, 아니 아마도 이 두 감정이 섞였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휴~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자꾸 그러시지… 나도 힘든데…’
나도 씩씩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와 누워 버렸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엄마가 방에서 나오며 나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나 간다!”
엄마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엄마의 언짢은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방문을 빠꼼이 열고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을 했다.
“어디 가려고요?”
“돈 벌러 간다! 돈 벌어서 애호박 박스 채 사다 놓으련다!”
역시나 엄마의 레퍼토리가 또 시작되었다.
‘짐 보따리를 또 싸셨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놀라기보다는 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또 속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하셨네…’
‘진짜 갈 것도 아니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가난한 나의 상황..., 그런 딸 집에 와서 사는 가난한 엄마의 상황...,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내게 너무 힘들어 목놓아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와 다툴 힘도 없었다.
나의 처지에 울고, 엄마의 처지에 목놓아 울고 싶을 뿐이었다.
누군가 말릴 새도 없이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엄마의 짐 보따리를 붙잡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엄마, 정말 왜 그래요~ 엄마!”
“제발 나간다는 소리 좀 그만해요…”
“제발! 그만… 그만해요… 엄마!”
말뚝처럼 우뚝 서 있던 엄마도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리듯 네게 말했다.
“내가 미안하다… 가진 것 없이 힘든 네게 와서 너를 더 힘들 게 하고 있으니…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고는 둘이서 엄마의 짐 보따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서로 이유를 물어볼 필요도,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이 한참을 울었다.
싸우다.. 짐 싸다... 펑펑 울다... 짐 풀다..., 싸우다.. 짐 싸다... 펑펑 울다... 짐 풀다...
엄마와 나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
.
.
.
엄마의 짐 보따리는 다시 풀어졌고, 그다음 날도 엄마는 여전히 노인정을 씩씩하게 출근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표지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