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참지…
새벽 4시경이 되면 친정 엄마는 2평도 안되는 부엌에서 어김없이 비닐 정리를 한다.
새벽 기도를 가기 전 5시까지,
부시럭 부시럭 ……
부시럭 부시럭 ……
부시럭 부시럭 ……
그 좁디 좁은 거실, 아니 거실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2평이 채 안되는 직사각형의 통로에서 엄마는 주저앉아 계속해서 비닐들을 정리한다.
아침 잠이 워낙 많은 터라 엄마의 비닐 정리하는 소리는 깜깜한 정적을 깨고 내 두 귀에 들리다 못해 내 온몸의 세포를 마구 찔러댔다. 그 소리가 더 격렬하게 들릴 때는 내 온몸의 모든 세포들이 일제히 곤두서서 아프다고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왜 매일 아침, 잠도 못 자게 비닐을 정리하실까?’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나이가 들면 잠이 안 온다더니 심심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미치겠네… 미치겠어…’
너무 짜증나 그만 부시럭거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가득이나 빈 몸으로 딸 집에 얹혀산다는 의식이 가득했던 엄마이기 때문에 혹시나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릴 것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다 참다
결국
어느 날,
방문을 빠꼼이 열고
“엄마~ 그것 좀 안 하면 안될까?”하고 짜증 섞인 말로 툭 내뱉었다.
“그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
“…… …… ”
엄마는 당황스러웠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가만히 있더니, 정리하던 비닐 봉지들을 싱크대 밑에 대충 쿡 쑤셔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는 또 잠이 들었다.
그때는 그 비닐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내 온몸이 지배당한듯 온통 고통받고 있는 나만 보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딸에게 한 소리 듣고 방에 들어간 우리 엄마는 2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좀 참지... 참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그 날 이후, 정말 하루 이틀 정도 비닐 정리를 안 했다.
덕분에 나도 늦잠을 잘 수가 있어 좋았다.
그런데 웬 걸…
작심삼일이라더니!
진짜 삼일이 지나자 엄마는 모든 걸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 다시 비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시럭 부시럭……
부시럭 부시럭……
그것도 새벽 4시,
부시럭 부시럭……
부시럭 부시럭……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엄마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아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자존심이 바닥난 엄마의 축 늘어진 어깨를 떠올리며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계속 되뇌었다.
잠에서 깨었다 들었다… 깨었다 들었다… 계속 반복했다.
몇 달이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내가 거는 최면에 내 몸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부시럭거리는 비닐 소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예 안 들린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 귀에, 내 몸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순간순간 잠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비록 선잠이긴 했지만 두 귀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내 귀를 내 온몸을 어르고 달랬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여전히 그 좁디 좁은 마루에서 비닐들을 정리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이지만,
왜 비닐 정리를 그렇게 매일같이 했을까?
그 많고 많은 시간 중에 왜 꼭 새벽 4시,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해야만 했을까?
지금은 엄마가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왜 그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