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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고백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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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Sep 16. 2024

화분 정원

마음

친정 엄마는 꽃을 무지 좋아했다.

어떨 때는 길가의 잡초도 예뻐서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허름한 전셋집에는 조그만 앞마당이 있었다.

그러나 온통 시멘트로 칠해져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심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어떤 엄마인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이더스의 손을 지닌 우리 엄마!

엄마에게 시멘트 바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시멘트 마당 가득히 화분들을 갖다 놓기 시작했다. 그 많은 화분들을 어디서 가져다 놓는 건지 신기할 정도로,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 다른 화분들이었다. 곧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담벼락 앞에 화분들을 줄지어 나란히 나란히 놓아갔다.

화분의 크기, 모양새, 재질, 그 어떤 것도 엄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꽃을 심을 수 있는 화분이면 그걸로 만사 다 ok! 인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했다.

작은 화분은 엄마 혼자 가져다 놓을 수 있다지만, 엄마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아주 큰 화분, 게다가 큰 도자기 화분을 언제 어떻게 갖다 놓는 건지 정말 신기했다. 추측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몇 천 원 손에 쥐어 주든가, 아니면 돼지껍데기 볶음에 소주 한 잔 사 주고 부탁했을 것이 분명하다. 다소 거칠긴 했지만 절대로 남에게 신세 지는 일 따위는 본인 스스로도 허락할 수 없는 성품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가 너무 지나쳐서 탈이지.


온 사방에 꽃이 만발할 때쯤이면 엄마는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어디서 공수해 온 지 모를 빈 화분에 꽃을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빈 화분 가득히 꽃을 피워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처럼 안절부절못한다. 어서 빨리 화원을 가서 화초들을 사 와야 한다는 것 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갈 시간 있어?” 엄마는 아침에 눈만 뜨면 마치 아이가 졸라대는 것처럼 화초 사러 가자고 졸라댔다. ‘엄마,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요...’라고 속으로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응, 오늘은 남편이 시간이 없대. 담에 가자...”라고 대답을 하면 엄마는 고개를 툭 떨구고 실망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는지 엄마는 혼자 화원에 가서 본인 스스로 들고 올 수 있을 정도의 화초들을 사 오기도 했다. 화초들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 가득히 사 가지고 와서는 말없이 빈 화분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오늘 화초 사러 가요!”하고 사위가 말했다.

그 순간 엄마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 아이 좋아라! 빨리 가세!”하며 온몸으로 기쁨의 환희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화원까지 가는 시간에도 그 기쁨을 사위에게 알리기라도 하는 듯 연신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화원에 도착한 엄마의 눈은 마치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아이처럼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하며 화초를 연신 주문하는 우리 엄마.

가난한 딸 네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그나마 눈치를 보며 사는 엄마의 눈빛은 행복감과 아쉬움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아마 주머니 사정이 얇은 남편은 속으로 안절부절못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눈치 빠른 엄마가

“이제 그만 사고 가자!”하고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 부부는 날름 화초를 차 뒤 트렁크에 싣느라 분주하다. 더 산다고 하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엄마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참,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 순수한 소녀 같기도 한 우리 엄마.


시멘트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쉴 새 없이 곧바로 화분에 화초들을 심기 시작한다.

꽃잔디, 과꽃, 베고니아, 채송아, 데이지, 팬지, 패랭이꽃, 피튜니아, 꽃기린, 튤립… 그 외에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화초들을 화분 가득히 심고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우리 엄마.

엄마는 아침마다 화초에 정성껏 물을 주었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너희들이 학교 다닐 때 학교 가는 모습을 거의 못 봐서… 먹고 사느라… 너희들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충족되지 못한 쓰라린 감정들을 화초들에게 물을 줘가며 아낌없이 쏟아붓는 것 같았다. 화초들도 엄마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아주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회색 빛 시멘트 바닥, 다 쓰러져 가는 시멘트 담벼락에 줄지어 예쁜 꽃들을 피우는 화초들은 <시멘트 정원>이 아닌 엄마의 못다 한 꿈을 위로해 주는 <위로의 정원>이었던 것 같다.


소박한 엄마의 정원을 바라보며 가난한 딸은 눈물로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엄마, 미안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사주지 못해서 ㅠㅠㅠ… 그러지 못해 정말 미안해요. 내가 이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면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사 줄게요. 그때까지 참아요. 정말 미안해요…’


그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화초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예쁜 것도 느낄 수가 없었고…, 돈이 없는데 화초를 사러 가자는 엄마가 야속한 나머지 예쁜 감정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예쁜 <화분 정원>이었는데…, 얼마든지 기뻐하며 행복해했을 텐데…. 그렇게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별 거 아니었는데….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는 그것만 보였다 ㅠㅠㅠ…

내 가난함만…

내 아픔만… 보였다.




* 표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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