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다행히도 친정 부모님은 9평 집에서 잘 지냈다.
어디서나 목소리 크고 친화력이 뛰어난 친정 엄마는 어느새 동네 사람들을 나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노인정에도 매일같이 출퇴근을 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버지는 집 밖 텃밭에서 놀이 삼아 작물들을 심으며 시간을 보냈다.
비록 남의 땅이었지만, 땅 주인의 허락을 받고 친정아버지는 그곳에 상추, 오이, 가지, 옥수수, 콩, 배추 등을 심으며 정처 없이 가는 세월을 낚았다. 구부러진 허리로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연신 호미질을 해댔다. 남은 세월 동안 가난한 막내딸 네에게 작물들을 대주는 게 삶의 목표인 양 끊임없이 잡초를 뽑고 땅을 파고 작물을 심어 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버지와 엄마는 밖으로 나돌며 가능하면 9평 집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시멘트 마당이라도 있고 남의 밭이지만 텃밭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노인정에 가 있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는 해가 없으면 텃밭에 나가 있었고, 해가 있으면 마당에 놓인 조그마한 간이 의자 위에 앉아 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참 사람의 감정이란 게…
결혼하기 전 부모님 집에서 살 때와 딸네 집에 부모님이 들어와서 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아주 낯선 감정이었다. 결혼 전 딸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혼한 딸네 집에 부모님이 얹혀사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 불편했다. 더구나 가난한 딸네 집에 가난한 부모가 와서 함께 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특히 우리 부부의 눈치를 끊임없이 보는 엄마의 행동은 안쓰러움을 넘어서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원인 모를 화를 불러일으켰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가난한 네 집에 와서 사니… 미안하구나...”
엄마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끝도 없는 엄마의 자조 섞인 한탄은 내 자존감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는 것 같았다. 엄마가 눈치를 볼 때마다 나의 가난한 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 같았다.
각 자의 불편함과 아픔을 지닌 채 서로 부딪치지 않기 위해
너도 나도 조심조심… 행동도 조심조심… 말도 조심조심…
조심조심 조심조심했다.
“뿡뿡뿡 뿌우~~~ 웅”
2평 남짓한 거실에서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남편이 방귀를 뀌었다.
나는 순간 경고의 눈빛이라도 보내는 양 남편을 째려 보았다.
“아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엄마가 사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말없이 밥을 먹고 있던 아버지도 씨익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다음 날부터 남편은 팬티 바람으로 그 좁디좁은 집안을 누비며 쉴 새 없이 방귀를 뀌고 다니는 것이다.
‘왜 저러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남편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귀를 뿡뿡뿡 뀌고 다녔다.
밥을 먹으면서도, 씻으면서도, 말을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뿡뿡뿡 뿌웅~~~
좁디좁은 9평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 남편의 방귀 소리는 날이 갈수록 기술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부모님도 호탕하게 웃으며 한 마디씩 했다.
“아이고~ 시원하겠네! 그려~”
“그러게 ㅎㅎㅎ.”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남편은 친정 부모님이 빨리 적응하실 수 있도록 일부러 방귀를 뀌고 다녔다고 한다. 진짜 남편의 방귀 때문에 부모님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불편해하고, 서로 미안해하고, 서로 고마워하며 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내 부모니까 그래도 괜찮지만, 남편은 아내 잘못 만난 죄로 무슨 생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정말 미안했다.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다. 엄마 말마따나, 어떻게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와 좁디좁은 집에서 사느라 마음고생이 여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존심 센 우리 엄마, 빈 몸으로 보따리 들고 들어왔을 때 어디 마음 편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때 더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