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집
조그마한 창문 너머로 가느다란 볕이 들어오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맞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어두컴컴한 지하 단칸방도 내게는 천국 같았다.
새신부인 내게 침대는 사치 품목 중에 하나라 엄두도 내지 못했고, 결혼 전에 쓰던 책상, 의자, 요와 이불 등을 그대로 쓰면서도 남편과 단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특수 교사였던 나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애아들과 볶다 거리다 집에 오면 지쳐 쓰러져 그대로 자기 바빴다. 그 상황 속에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시작한 특수교사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시기만 노리고 있었다. 마침 아이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이때다 싶었다. 뱃속에 아이를 갖고는 도저히 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결혼한 그 해 12월에 과감하게 특수 교사의 옷을 벗어던졌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은 아이를 지하에서 키울 수는 없다는 책임감이 불 일 듯 일었다. 아내가 몸을 풀기도 전에 남편은 혼자서 매일같이 지상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지상의 전셋집을 계약했노라고 이야기했다. 추진력이 짱이었던 남편 덕분에 우리 부부는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드디어 한 달 만에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워낙 없이 시작한 결혼이라 아주 번듯한 지상 집을 꿈꾸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지하 전셋집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랑이는 바람처럼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설렘도 잠시, 갓 태어난 딸아이를 안고 새로운 전셋집 마당에 들어 선 나는 모든 세포가 얼어붙을 정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대궐 같은 집은 아니어도 그래도 내심 기대했는데..., 내 눈앞에 서 있는 전셋집은 세찬 폭풍우만 몰아쳐도 우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수치스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뭔 자존심인지 그 눈물 또한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안으로 삼키고 삼키고 또 삼켰다.
온통 잿 빛의 건물과 마당,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기울어진 시멘트 담벼락,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와지붕, 금세 부서질 듯 위험천만한 슬레이트 처마, 마당 군데군데 깊이 파인 웅덩이, 있으나 마나 한 철 대문……
지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외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비참한 나의 수준을 새삼 알려주는 것 같아 너무 슬펐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그래, 내가 살 집이 이렇지 뭐!’
곧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허름한 집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런 불편한 집에 친정 부모님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