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만 남고...
엄마가 조금씩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깜박깜박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이고, 없던 일도 있던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말한다.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우리 엄마 맞나?’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나는 감기몸살로 열이 펄펄 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많이 아파?”
방문을 열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니… 괜찮아, 엄마! 쉬면 괜찮을 거야.”
“그래, 다행이다.”
“……”
“왜 엄마?”
“……”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내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하고 있다.
“뭐? 엄마.”
“아니… 비가 오니까 입이 궁금하네…”
“그래, 엄마. 뭐가 먹고 싶은데?”
“미안해서…”
“뭔 데, 엄마?”
“…… 만두……”
“그래, 엄마. 근데… 어떡하지…”
열이 나는 중이라 흔쾌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됐어! 담에 먹지 뭐...”
휠체어를 슬며시 뒤로 빼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왔다.
예전의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아쉬움이 가득 찬 엄마의 눈빛은 내 가슴에 슬픔으로 박혀 버린다.
나 어릴 적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는 본인이 먹고 싶은 것보다는 딸의 건강이 더 마음 쓰였고, 어떻게 해서든지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아니 만들어 주었다는 말보다는 만들어 받쳤다는 말이 맞는 표현일 게다. 엄마는 아픈 딸이 한 수저라도 더 먹기를 바라며 딸 앞에 앉아 딸이 먹고 있는 모습을 안쓰러움과 흐뭇한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그런 엄마가 그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 열이 펄펄 나 아프다는데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만두가 먹고 싶다”는 그 말에 슬픔이 밀려와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만두를 사다 드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열이 너무 펄펄 나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 들 정도의 힘도 없었다. 아무래도 해열제라도 먹고 갔다 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우선 빈속에 해열제를 두 알 털어 넣었다.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해열제 먹고 열 내리면 사다 드릴게요.”
엄마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정말!”
“응, 조금만 기다려요.”
“너 힘든데…”
딸인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만두 먹을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괜찮아…”
“그래! 그럼 열 내리면 나가…”
“응! 알았어!”
엄마의 환한 미소가 진짜 어린 내 딸처럼 순수해 보였다.
약을 먹고 약 30분이 지나자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우산을 쓰고 만두를 사러 갔다.
만두를 사러 가는 내내 엄마의 환한 미소가 우산 속 내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엄마는 만두가 정말 먹고 싶었나 보다.
“엄마, 그렇게 맛있어!”
“응, 정말 맛있다.”
“엄마 많이 먹어요. 꼭꼭 씹어서.”
“그래.”
만두를 먹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왠지 낯선 모습에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분명 예전의 우리 엄마가 아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모성애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때는 그 말씀이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때는 엄마의 모성애와 하나님의 사랑이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만두 앞에서 무너지는 엄마의 모성애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면서 너무 슬퍼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분명 딸의 건강도 걱정되지만 그래도 엄마의 저 밑바닥에 있는 본성, 자기애가 모성애를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그렇구나!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구나! 결국 최후에는 모성애도 사라지고 자기애만 남는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가눌 길이 없었다.
모성애가 사라져 가는 우리 엄마……
어린아이 같은 우리 엄마……
딸의 딸이 되어버린 우리 엄마……
* 표지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