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 >
미대를 가고 싶어 한동안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어떤 큰 뜻을 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기보다는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 시간에 주목을 받으며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었고, 그 막연한 기대감으로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자존심이었는데 그 자존심 때문에 입시를 코앞에 두고 그림을 접고 말았다. 그때 남은 아쉬움 때문인지 때때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림동화에 글을 쓰면서 그 욕망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화가인 친구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게 “내가 가르쳐 줄 게 뭐가 있겠어! 같이 그리면 돼!”라고 하며 선뜻 약속을 해 주었다.
그 친구의 말 대로 작은 크로키 북과 연필, 다양한 색깔의 여러 가지 볼펜, 지우개 등을 챙겨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났다.
의자에 앉아,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자유롭게 그리면 돼!”라고 친구가 말했다.
그림동화 <점>에서 선생님이 베티에게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친구가 툭 던졌다. 그런데, 그 ‘자유롭게’라는 말이 참 어려운 말이다. 정말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데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이 나를 자유롭게 놔두질 않았다. 내 이미지 속의 잎사귀는 푸르러야 하고, 사과는 동그래야 하고, 사람들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다 있어야 하고... 이런 고정화된 이미지 속에 갇혀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고정관념,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더구나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을 다니며 배운 것들이 나를 놔주질 않았다. 각도며, 구도며, 명암과 같은 낯익은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우왕좌왕 떠들어댔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박혀 있는 대로 연필을 그어나갈 뿐이었다.
그림동화 <점>에서 선생님은 베티가 쿵! 찍은 점 하나로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베티는 멋진 예술가가 되었다(우리가 생각하는 고정화된 예술가가 아닌). 베티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빈 도화지를 내놓았을 때도 선생님은 하얀 도화지를 보며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라고 말한다. 선생님의 센스, 배려 등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림을 같이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런데 선뜻 나서지는 못한다. 내 안의 틀이 아직 깨지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틀이 점점 더 완강하게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이는 대로, 여과 없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오겠지... 올 거야...
* <점> (피터 레이놀즈 글/그림, 김지효 옮김, 문학동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