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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

느림의 육수 < Life 레시피 >

by 이숙재
‘감칠맛’의 사전적 의미는 1.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2.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뜻한다.
‘감칠’의 어원은 ‘감치다’로 1. 잊히지 않고 항상 마음에 감돌다, 2. 입에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감돌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치다’라는 단어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고유어로, ‘음식이 감칠맛 나게 맛있다.’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잘한다.’라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감칠맛’이란 어떤 맛일까?

단맛, 쓴맛, 신맛, 짠맛,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맛은 음식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맛이다. 물론 반드시, 꼭,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있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는, 음식의 맛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감칠맛’하면 대개 MSG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일 먼저 다시마, 멸치, 양파가 떠오른다. 이 세 가지만 있다면 풍미 가득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흔히 밖에서 먹는 ‘달걀찜’에도 분명히 MSG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 만약에 맹물로 끓였다면 이 들척지근한 맛을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ㅠ. 처음 한술은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입안에서 MSG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어떨 때는 그 반란의 기분 나쁜 맛이 입안에서 아우성치는 바람에 정말 괴롭다.


어느 날, 고민을 해 보았다.

‘왜 집에서 달걀찜을 하면 밖에서 먹는 그 맛이 나지 않을까?’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 육수를 내서 달걀찜을 해 보자!’


와우, 정답이었다!


정말 맹물로 끓였을 때보다 맛이 훨씬 더 풍부하고 더 고소해졌다.

이 후로 나는 거의 모든 음식에 육수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밥을 지을 때도,‘불고기 전골’에도, ‘콩나물 무침’에도, ‘궁중 떡볶이’에도, ‘닭볶음탕’에도, ‘미역국’에도, ‘열무김치’에도, ‘두부조림’에도, ‘우엉조림’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요즘 누가 번잡스럽게 직접 육수를 내! 그냥 육수 한 알 같은 거 사서 써. 맛이 꽤 괜찮아!”

친구의 말에 혹 해서 ‘육수 한 알’도 사 보았다. 그런데 웬 걸 ㅠ… 마치 MSG 한 알 같은 맛이었다. 입안 가득 MSG 반란의 맛이 내 혀를 마비시켰다. 내 입에는 그냥 또 다른 종류의 조미료일 뿐 ㅠ. 아깝지만 결국 딱 한 번 먹고 버렸다. ‘좀 편하려나’라는 기대감도 없잖아 있긴 했지만, 역시 음식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음식을 하지만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음식은 정성이다!’라는 말이 만고의 진리인 듯 ㅎ.


나는 다시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일일이 멸치 내장을 따고, 덖고(비린내 제거 작업), 다시마를 씻고, 양파를 썰고, 커다란 곰솥 가득히 물을 부어 팔팔 끓이는, 이 우아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한다.

‘감칠맛’ 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번잡스러울 수 있지만...

미련곰탱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삶의 방식대로 느리게,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

비밀스러운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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