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 Life 레시피 >
정말 꼼짝하기 싫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나가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퇴근하며 돌아온 남편의 양손에는 커다란 아이스박스 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어쩌지... 친구가 이걸 내 차 안에 놓고 도망가네...”
묻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내 반응을 유심히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예전에도 생물을 선물로 받아왔을 때 칭찬은커녕 오히려 면박만 당한 일이 많은 터라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예전 같으면 “이건 또 뭐야!”라고 하면서 인상부터 찌푸렸겠지만 조금 철이 들면서부터는 모든 것에 감사하자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아이스박스를 개봉해 보았다.
“와~ 당신 좋아하는 낙지와 전복이네!”라고 하면서 남편은 내가 어떻게 나올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예전 같으면 “이걸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하며 남편에게 핀잔을 퍼부었을 텐데... 그래도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러네...”라고 영혼 없는 반응을 보였다. 분명 감사한 마음이 앞서는 건 사실이지만, 그 꿈틀대는 낙지와 전복들을 보면서 귀찮다는 생각까지 드는 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겠다고 바둥대는 낙지들과 전복들을 보면서 잡아먹겠다고 칼과 가위로 무장하면서 개 네들과 사투를 벌일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정말 꼼짝하기 싫은 날,
살아서 마구 꿈틀대는 낙지와 전복을 마주하자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아... 이 많은 것을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잠시 머릿속이 멈추었다.
포장된 그대로 냉동실에 넣자니 찝찝하고, ‘이렇게 살아 있을 때 먹는 것이 제일 부드럽고 맛있는데...’라는 생각에 그만... 고무장갑을 끼고 사투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전복은 남편에게 손질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선뜻 대답을 해 주었다. “이렇게 하면 돼?” “이래서 여자들이 이런 선물 받아오면 싫어하는구나.”라는 이야기들을 조곤조곤하면서 열심히 전복을 손질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거 받아오면 어떻게 해! 앞으로 이런 거 받아오지 마!”라고 핀잔을 잔뜩 퍼부었을 텐데 철이 조금 든 나도 “그래도 감사하지!”라고 상냥하게 대꾸했다.
“이거 손질해서 오늘 저녁 짬뽕 해 먹을까?”
“짬뽕! 좋지! 근데 당신 매운 거 아직 잘 못 먹잖아?”
“빨간 짬뽕도 하고 하얀 짬뽕도 하지 뭐”
“아냐. 귀찮잖아. 당신도 먹게 하얀 짬뽕으로 해!”
“아냐. 그리 귀찮지 않아. 쉬워!”
“그래, 당신 편한 대로 해!”
정말 꼼짝하기 싫은 날,
꿈틀대는 낙지 앞에 서서 고무장갑을 장착하고 ‘짬뽕’을 해 먹을 생각을 하는 나.
‘참, 나도 철 많이 들었다!’라는 생각을 하며 푸흡~ 웃어본다.
< 빨간 짬뽕 > & < 하얀 짬뽕 >
< 빨간 짬뽕 >과 < 하얀 짬뽕 >의 차이는 단지 빨간색 고춧가루가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이다. 원래 <빨간 짬뽕 >을 좋아하지만 요즘 위가 안 좋은 관계로 나를 위해 < 하얀 짬뽕 >을, 남편을 위해 < 빨간 짬뽕 >을 하기로 했다. 귀찮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귀찮은 일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즐거운 일. 역시 조금 철이 든 듯 ㅎㅎㅎ. 여기서는 < 빨간 짬뽕 > 레시피만 ㅋ.
맛있는 < 빨간 짬뽕 >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낙지 1마리, 전복 3마리, 양파 1/2개, 배추 3 잎, 양배추 50g, 버섯류(표고, 느타리, 팽이 등) 50g, 청경채 1개, 숙주 100g, 대파 1개, 빻은 마늘 2 찻숟가락, 빻은 생강 1/2 찻숟가락, 고춧가루 1 밥숟가락, 식용유, 굴소스, 치킨스톡 1/3 찻숟가락, 진간장, 육수 또는 생수
손질부터~
< 짬뽕 >에는 아주 다양한 재료들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많은 재료들을 다 손질해 놓은 다음 요리에 들어가면 훨씬 더 편리하다는 것! 또 센 불에서 휘리릭~ 볶아야 하기 때문에 미리 재료부터 다 손질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휘리릭 ~ 순서대로 볶기
1. 예열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마늘과 대파를 타지 않도록 볶는다.
2. 1에 고춧가루를 넣고 타지 않도록 볶는다.
3. 다 손질된 야채들 중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양파, 양배추, 배추, 대파를 넣고 재빠르게 볶는다.
4. 3에 버섯들을 넣어 볶는다.
5. 4에 진간장을 넣어 볶는다. 이때 진간장은 재료들 위에 붓지 말고 프라이팬 가장자리를 두른다는 개념으로 뿌려 볶는다. 이렇게 해야 진간장의 진한 맛이 우러나와 국물의 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6. 5에 굴소스를 넣고 재빠르게 섞는다.
7. 6에 육수(또는 생수)를 재료가 담길 정도로 붓는다.
8. 7에 치킨 스톡을 넣는다. 이 과정은 각 자의 기호에 따라 생략해도 좋다. 사실 나는 이 과정을 생략하는 편이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ㅎ.
9. 8이 팔팔 끓으면 낙지와 전복, 팽이버섯, 숙주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이때 너무 많이 끓이면 낙지와 전복이 질겨질 수 있기 때문에 낙지와 전복이 적당히 익었을 때 불을 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 하얀 짬뽕 >은 위의 레시피 중에서 2 과정만 빼면 된다.
* 표지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