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색깔 < Life 레시피 >
안창호 선생님의 위인전을 쓸 때였다.
우선, 글을 쓰기 전에 안창호 선생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자료를 찾고 복사를 하고 안창호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복사한 자료들을 줄을 쳐가며 꼼꼼히 읽어 나갔다. 그리고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었기 때문에 어린이 도서관으로 갔다. 초등물에서부터 유아물에 이르기까지 안창호 선생님에 관한 위인전이 생각보다 아주 다양했다. 한 번에 다섯 권씩 찾아와 의자에 껌딱지를 붙여 놓은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나갔다. 어른 도서관에서부터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안창호 선생님에 관한 책은 눈에 보이는 대로 며칠을 읽어 나갔다.
그런데 놀라운, 내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마도 글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보면 너무 무식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ㅠ. 안창호 선생님은 한 분인데 글 쓴 작가에 따라 안창호 선생님이 너무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똑같은 안창호 선생님인데 다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지극히 내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한 작가는 운동권에 관심이 많은 작가였던 것 같다. 판화 형태의 걸개그림과 함께 안창호 선생님을 마치 투사처럼 그려냈다. 또 다른 작가는 안창호 선생님을 아주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으로 그려냈다.
작가에 따라 글의 형태나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수없이 많은 그림책에 글을 쓰면서도 왜 그렇게 늦게 깨닫게 됐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특히 그 당시 나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동화들을 많이 쓰던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더군다나 도서관 바닥에 앉아 내가 쓴 그림동화책을 보고 있던 어린 꼬마를 보고는 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글 쓰는 일을 나는 단지 밥벌이로만 생각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써댔구나라는 회한이 밀려왔다. 도서관 바닥에 앉아 내가 쓴 책을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읽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빛의 속도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용기만 있었다면 그 아이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을 정도로 미안하고 창피했다. 생각 같아서는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내가 쓴 책들을 다 회수해 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도서관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아이들이 일제히 내 등 뒤에서 나를 마냥 째려보는 것 같았다.
얼굴을 모자로 가린 채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글을 쓰고 있는, 특히 나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색깔, 나의 방향성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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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점점 생각이 모아지면서 나의 색깔을 어느 정도 잡아갈 무렵 출판사로부터 독촉 전화가 왔다.
전보다는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다시 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몇 권의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방향성이 더욱더 분명해져 갔다.
그리고 편안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어떤 글들을 쓸진 모르지만 나는 정직하게, 진솔하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색깔 대로 ㅎ.
나의 Message를 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