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의 지구 방랑기를 시작하며
우리 은하 변두리의 평범한 별, 태양
그 태양으로부터 93 Million Miles 거리에 있는 작은 행성 지구
보이저 1호가 가장 멀리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희미한 점 하나가 바로 지구이다. 이 사진을 찍도록 보이저 1호에 보내는 마지막 통신을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고 최고의 과학 도서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동명의 다큐멘터리의 진행자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희미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 칼 세이건이 사진에 대해 기록한 소감문
그렇게 이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리게 되었고 인간이 찍은 가장 위대한 천문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창백한 푸른 점을 14개월 동안 떠돌고 남은 메모와 사진을 이 곳에 남기려 합니다.
세 곳의 회사를 다니며 너무나 빨리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열심히 지냈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 하고 싶은 분야의 업무를 오랜 기간 동안 할 수 있었고 나름 괜찮은 평판을 받았다. 하지만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의지로 진행 중이던 사업이 중단되고 나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해야만 하는 것들로 내 앞은 가득 채워졌다.
삶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디어 내는 것이 되어 버렸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책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그냥 어디 먼 곳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14개월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이국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여행이 길어지며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방문한 곳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우울한 메모들이 늘어났다. 여행의 기록들은 그렇게 조금씩 삐딱한 기록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그 메모들을 정리하고 있다. 간략한 메모 형태로 에버노트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보고 다녀온 도시들을 하나씩 다시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이전에 알고 있던 던 내용도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있었다. 중요하고 또 아픈 일들이 있었던 도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고만 왔구나'하는 미안함도 느껴졌다. 짧은 메모에 살점이 더 붙으며 글은 더 삐딱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주의 작은 먼지, 창백한 푸른 점'을 여행한 조금은 삐딱한 여행기이다.
물론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라고 여행 중에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한다. 과거의 좋지 않은 일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고 잊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