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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l 06. 2016

16세기 유럽의 양심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2015년 6월 9일

크지 않은 성당과 집들이 예쁜 곳. 

반도네온을 멋지게 연주하는 거리 악사의 벳사메 무쵸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해발 2,110m의 고지대에 있는 도시이고 주민의 대부분이 마야 원주민인 도시이다. 과테말라와 멕시코의 국경 부근의 관광지인 까닭에 두 국가를 함께 여행하는 여행객은 꼭 방문하게 되는 도시이다.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도시이다. 식민시대에는 치아파스주의 수도였지만 이제는 평안함을 찾는 여행객을 위한 관광 도시가 되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무척이나 이름이 긴 도시이다. 이 도시의 이름에 들어있는 '라스 카사스'는 사람의 이름이다. '16세기 유럽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인디언의 역사'라는 책에 ‘서인도 제도에서 자행한 학살 행위 때문에 스페인은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라고 적었다. 


라스 카사스는 인디언들의 열악한 처우에 분노하여 인디언들의 처우 개선에 노력했다. 식민지에서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본국으로 건너가 신대륙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자신의 책임 하에 문명 공동체를 수립하는 권한을 받아 다시 이곳에 오기도 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하고 인디언 살육과 정복 활동을 고발하는 책을 집필하고 사후에 '인디언의 역사'를 발표했다. 


'그들의 만행은 인디언들을 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시신을 토막 내기 일쑤였다. 이러한 행동은 사람의 배를 단칼에 관통할 수 있는지 또는 단칼에 목이 잘리는지를 내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머물던 3개월여에 걸쳐 살해된 어린아이의 숫자만 해도 6,000명 이상이었다.' 그 책의 일부라 한다.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의 인문주의자인 후안 히메네스 세풀베다와 유명한 논쟁을 벌였다. 인디언에 대한 무차별적인 정복이 정당한 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논쟁에서 세풀베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1. 원주민들은 인신 공양은 물론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질렀다.

2. 선천적으로 야만적이고 미개한 그들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의 성품을 갖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부합한다.

3. 이러한 종족에게는 오직 군사적 정복만이 효과적인 선교 책이 될 것이다.

4. 연약한 원주민을 잔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정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해 라스 카사스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1. 우상을 숭배하고 인신공양을 드린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만의 일이 아님은 역사가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로마뿐 아니라 고대 스페인에서도 우상 숭배는 있었으며 인신공양 역시 인류 역사에 엄연히 존재한 바 있다.

2. 원주민들의 예술과 학습 능력을 살펴보건대 그들이 우리에 비해 더 잔인하거나 무도하다고 할 수 없으며 나에게는 오히려 이성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3. 다른 어떤 이교도들도 억압과 강제 노동을 당하는 경우 저항할 권리가 있듯이, 그들 또한 불법적인 정복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4. 인신공양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야만적인 행동을 금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무력이 아니라 지도와 설득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원주민들의 권리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중남미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이 곳을 국가 역사 기념 도시로 지정하였다. 식민지 유산과 원주민 문화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인정받은 것이다. 1994년에 북미 나프타 협정으로 농민 피해가 예상되자 반정부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원주민 해방을 선포한 대정부 항거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결과는 정부와의 협상으로 평화적인 마무리였다. 상당 부분의 지역 자치권을 부여받고 일부 경찰권과 원주민의 조세부담도 면제받게 되었다.


크지 않은 성당과 집들이 예쁜 곳이다. 이전의 도시가 빠나하첼이었던 탓에 크게 다가오진 않지만 지친 여행객에게 잠시 쉬어갈 곳으로 추천할 만하다.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듯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와지붕이 있어 더 친숙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메인 거리인 과달루페 거리에는 수년 전부터 유럽인들이 이주를 해서 지금은 4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다른 멕시코 지역과는 달리 범죄단체가 없어 치안이 안정되어 있고 날씨가 좋은 이 곳에서 정착해서 작은 베이커리나 카페 등을 하고 있다. 


동으로는 오악사카(오아하까), 서로는 팔렌케, 남으로는 과테말라의 빠나하첼로 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중남미의 여느 스페인 식민지 도시처럼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포장도로에 여행자들과 원주민들이 뒤섞여 걷는다. 노천카페에서는 맥주를 즐기는 여행객들 사이로, 반도네온을 멋지게 연주하는 거리 악사의 벳사메 무쵸를 들을 수 있다.

 

과달루페 성당
산타 루치아 교회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엘 카르멘 사원


산 크리스토발 교회


하늘이 예쁘다. 게다가 기와 지붕이 있다.


대성당 앞 광장
남미의 유랑 악단이 여기까지 왔다.
뮤직 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거리의 음식들이 모두 달다.
드림 캡쳐 - 중미의 대표적인 기념품
행상 아이들 - 여행객들 사이에선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지 말라 하는데 안타깝다. 안타까워 물건을 사면 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
시장


곳곳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숙소의 담쟁이 덩굴 - 친절함이 과하신 할아버지의 집이다. 잘 자라는 인사를 5번은 하신다.
떠나는 버스 터미널 앞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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