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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l 19. 2016

무엇이 아름다운가?

보고타 2015년 6월 18일

오 등신의 신체, 떡 벌어진 어깨와 달덩이 같은 얼굴들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미의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에 왔다. 콜롬비아라는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이 지배하던 남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었다. 


현재의 콜롬비아, 파나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가 모두 콜롬비아로 불리다 19세기에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등이 떨어져 나가고 이 나라의 국호가 되었다. 그런데 수도의 이름인 보고타는 그 정복자들에게 억압받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다.


해발 2,600미터 정도의 고지에 자리 잡은 보고타는 한때 여행자들이 피하던 도시였다. 마약왕의 이야기와 지저분한 도심 때문에 위험하고 더러운 도시로 악명 높았다. 치안이 강화되고, 도심 정리 사업이 계속되며 보고타는 남미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예스러운 교회 건물들, 화려한 밤 문화, 화려하지는 않지만 꼭 봐야 할 박물관들이 있다. 하지만 관광 지역을 벗어나면 여전히 위험한 곳이 많다. 숙소의 주인장이 첫날 건네주는 지도에는 넘어서지 말아야 하는 경계가 뚜렷하다.

 

커피와 코카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들어오는 비행기 값이 저렴해서 장기 여행자들이 남미 여행을 시작하거나 끝이 되는 곳이다. 보고타에는 대부분의 한국인 남미 여행자가 거쳐가는 숙소가 있다. 


존이 운영하는 'Sayta'이다. 여행객들의 입으로 전해진 존의 소문 때문에 Sayta는 늘 한국인이 북적댄다. 배려심 많고 유머러스한 존과 머나먼 남미까지 떠나올 수 있는 열린 마음의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또 하나의 작은 한국을 만든다. 매일 밤 한국 음식이 등장하고 왁자지껄해진다.


존의 매력은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묶는다. 이틀을 머물겠다던 보고타의 일정이 일주일이 되고 보고타와 메데진만을 보겠다던 콜롬비아 일정이었지만 5개의 도시를 돌고도 다시 존을 보기 위해 보고타로 와야 했다. 여행의 목적은 '구경'이 아닌 '쉼'이다. 관광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지만 여행은 사이사이 쉼표를 끼워 넣어야 한다.     


Sayta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기증관이 있다. 청년시절 콜롬비아를 떠나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이태리로 옮겨 다니며 세계 미술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보테로가 자신의 그림과 소장품들을 기증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키 150cm에 몸무게 100kg 은 되어 보이는 여인들이 보테로가 그리는 인물이다. 오 등신의 신체, 떡 벌어진 어깨와 달덩이 같은 얼굴들이다. 그리고, 그림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 공허한 눈을 가지고 있다. 삐쩍 마른 여성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 시대에 뚱보만 그리는 화가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형태와 색에서 나의 유형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단지 뚱보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보테로의 이야기다.


형태와 색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하는 화가라고 한다. 빛과 그림자가 아닌 형태와 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물을 표현하고 싶으면 주 인물을 그려 넣은 후 즉흥적으로 그 배경이 되는 다른 인물이나 사물을 그려 넣는다. 색도 그런 방식이다. 그의 대표작인 '12세의 모나리자'도 그리다 보니 모나리자를 닮은 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청소하는 사람의 '모나리자 닮았다'는 말이 제목이 되었다.


남미의 외진 마을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이 아닌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피카소는 보이는 형태를 그리지 않고 대상의 '움직임'을 그리며 미술계의 새로운 개척자가 되었다. 보테로도 그 만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고 이제는 라틴 정서를 담는 풍자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매일 같은 것을 보면 아름다운 줄 모른다. 다른 것을 본 후 보는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행복에서 떨어져 봐야 비로소 행복을 성찰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불안한 치안 때문에 관광객들이 머무는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볼거리도 많고 집과 같은 분위기의 숙소에서 쉬었다 간다. 백숙, 삼겹살, 불고기 전골, 수육 등으로 심신을 위로하며... 여행은 사람이 제일 우선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한 곳이었다. 계속된 비에 몬세라떼 언덕을 못 오른 것이 아쉽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보고타 전경
보고타 시내에 최근 수년 사이에 그래피티가 늘고 있다.
볼리바르 광장의 대성당
볼리바르 광장
카피톨리오 나시오날(국회의사당)
곳곳에 공연 중인 악단들이 많다.
일요일에는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들어선다.
축구 경기 때 TV 있는 가게 앞 풍경이다. 보지 않아도 거리에서 경기 상황을 알 수 있다. 모두 들린다.
아직 폴더폰이 유행이다.
버스 안의 가객
서울의 버스 환승 제도가 보고타의 것을 유사하게 들여온 것이다.
보고타 인근에 에메랄드 산지가 있다. 에메랄드 거래인들의 절반은 총을 가지고 있다고 존은 주의를 준다.
보고타에서 40km 정도 외곽 시파키라의 성당
시파키라 소금 성당 - 소금을 캐던 광산 내부에 큰 규모의 성당이 있다.
존이 가지고 있는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 - 머물던 게스트가 벼룩시장에서 사서 기증한 것이라 한다.
영희, 철수가 아닌 기영, 순이였다.
72년에 초판 발행이고 79년도 같은 책이 발행 되었다.
12세의 모나리자 - 보테르의 대표작이다.
보테르 기증관에 보테로가 기증한 123점의 작품과 그가 소유했던 피카소, 달리, 샤갈, 미로 등의 조각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황금 박물관의 유적들
멀리 몬세라떼 언덕이 보인다.
Sayta 앞 골목 풍경


내내 비가 오는 날씨더니 콜롬비아를 떠나는 마지막 날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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