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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l 20. 2016

꽃과 미녀의 도시

메데진 2015년 6월 25일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근거지였던 곳.

마약왕의 도시가 이제는 꽃과 미녀의 도시라고 불린다.


콜롬비아는 남미에서도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꼽히던 곳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내전은 좌익 게릴라, 우익 민병대, 마약 카르텔이 뒤섞여 50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치안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무장 반군이 장악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여행이 가능하다. 


콜롬비아의 제2의 도시인 메데진은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패션의 도시이자 보테로의 고향이다. 하지만 이 도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이다. 오랫동안 이 곳은 그의 근거지였다. 콜롬비아의 국가 부채를 다 갚아주겠으니 마약 거래를 합법화하자는 제안까지 했던 인물이다.


미국의 대외적 골칫거리가 테러와 중동 외교라면, 마약은 미국을 안에서부터 썩게 만들었다. 미국의 마약문제는 콜롬비아의 밀수업자 파블로의 영향이 컸다.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인해 칠레의 기반을 잃은 마약 생산자들이 밀수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로 피신해 주변 국가들에 코카인을 공급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국가가 아닌 미국을 선택한 사람이 돈세탁과 주류 밀수를 하던 파블로였다. 마이애미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간 코카인은 빠르게 마리화나를 대체했다. 마이애미를 통해 수십억 달러가 콜롬비아로 빠져나갔다. 


파블로는 한 발 더 나아가, 밀수업자들의 연맹을 제안한다. 자신이 유통을 담당하는 것을 조건으로 밀수업자들의 동업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렇게 메데진 카르텔이 형성되며 파블로의 재산은 25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끔 내 자신이 신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를 죽이라고 말하면, 그는 그날 죽어있다.'

– 파블로 에스코바르


파블로는 콜롬비아에서 정말 신과 같은 존재였다. 메데진의 빈민들에게 병원과 학교, 주택을 지어주는 자선사업을 펼쳐 ‘메데진의 로빈 후드’라 불렸다. 그는 합법적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국회의원에서 쫓겨난 후 콜롬비아 전역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증거를 없애기 위한 고등 법원 공격은 물론 마약 카르텔 제거를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기 위해 민간인 107명이 탄 항공기를 공중 폭파하기도 했다.


국회를 매수해 마약사범이 자수할 경우 미국으로 강제 송환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후 1991년 6월, 파블로는 자수를 한다. 황당하게도 그는 자신이 지은 감옥에 수감되었다. 40만 평 부지에 수영장과 나이트클럽까지 갖춘 감옥이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어 진짜 감옥에 들어갈 상황이 되자 파블로는 자신의 개인 교도소를 탈출한다. 메데진의 빈민가에서 1년이 넘게 숨어 있던 그는 결국 콜롬비아와 미국의 합동 추격전 끝에 사살되었다. 93년 12월 3일, 마흔네 살 생일 다음날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7대 부자에 뽑히는 극적인 상승을 이뤄낸 남자이다. 마약으로 먹고살았지만 정작 자신과 가족은 코카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파블로는 죽었지만 콜롬비아의 마약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콜롬비아는 아직도 300만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인 마약 관련 일에 종사한다. 메데진의 빈민가는 아직도 암흑가 갱들의 영향이 미친다. ‘안전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가고, 선거 때가 되면 찍을 곳과 안 찍을 곳을 알려준다고 한다.


메데진의 빈민가라는 산토 도밍고를 지하철과 케이블카를 타고 찾아갔다. 어디에서나 가난한 이들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쫓겨난다. 고지대의 가파른 골목마다 작은 집들이 빼곡하다. 


파블로가 죽고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수도인 보고타 보다 메데진이 더 깨끗하고 안전해 보인다. 마약의 도시가 이제는 꽃과 미녀의 도시라고 불린다. 도시 어디에나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대부분의 건물이 빨간색의 벽돌로 지어져 도시가 알록달록하다. 수도인 보고타에도 없는 지하철이 있고 고지대의 빈민가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해 대중교통을 지원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만 모든 곳에서 우리는 주목받는 사람이다. 슬쩍 보는 것이 아닌 빤히 바라본다. 뭐 이제는 누가 보든 신경도 안 쓰는 경지가 되었다. 꽃밭의 파리 모드는 마무리되고 앞으로 당분간 미녀와 야수 모드이다. 남미 여행을 마치고 다른 곳을 향하는 일행과 이별을 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둘이 남았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붉은 색이다.
대도시이다 보니 쇼핑 상가들이 많다. 쇼핑상가 내부
빈민가를 오르는 케이블카 - 지하철과 연결되는 대중교통이다.
메데진의 야경은 남미 여행에서 손 꼽히는 풍경 중 하나이다.
케이블카의 높이가 100m를 넘는 듯하고 빈민가의 건물들 위를 지난다.
보테르의 고향답게 더 큰 규모의 보테르 기증관이 있다.
수도인 보고타에도 없던 지하철이 있다.
근교의 엘 뻬뇰 - 세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바위로 불리운다.
740개의 계단을 오른다.
엘 뻬뇰의 풍경
호수와 함께 어울리는 구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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