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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May 15. 2016

끝없는 탁발 행렬, 하지만...

만달레이 2014년 9월 17일

미얀마 두 번째 도시이자 불교 중심지

미얀마의 패망과 근대국가로의 여정을 느낄 수 있는 곳


미얀마는 인도를 제외한 나라 중 유일하게 불교 경전 결집을 한 나라이고 모든 남자들이 인생에 한 번 이상 출가하는 나라이다. 만달레이가 그 불교 경전 결집이 진행되었던 곳이고 미얀마의 불교 중심지이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수도원이 있는 도시이다. 


제2차 영국과의 전쟁(1852~1853년) 패전 직후 꽁바웅 왕조가 만달레이로 천도하고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강화했다. 부처의 힘으로 외세에 맞선다는 생각으로 1871년 불교 경전 결집을 하여 석장경들을 파고다의 내부에 모셨다. 


하지만 제3차 전쟁에서 또다시 패전한 미얀마는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인도의 한 주가 되었다가 다시 분리되기도 했다. 영국과 일본 간의 식민지 쟁탈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1948년 독립국가로서 자유를 되찾는다.


식민지 시대에서 독립까지 미얀마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은 당시 승려들의 구호 '우리 종족, 우리 종교, 우리 언어', 즉 불교이다. 그러나 불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 뿐 정치는 아니었다. 부처님이 종교를 신의 덫으로, 정치를 인간의 덫으로 비유하면서 덫에서 벗어나라 하였다 하여 승려들은 미얀마의 정치를 외면해 버렸다. 


부처님은 신의 덫, 인간의 덫을 모두 벗고 깨닫으라는 의미였지만 승려들은 인간의 덫은 외면하고 신의 덫 안에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국 국가도 종교도 미얀마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지 못했다. 


미얀마인들의 하루 생활비는 1~2달러 정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800달러 정도이다. 수치로 보면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이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대부분 빈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가 종교관이다. 미얀마가 최빈국이 되고 과거 8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은 '무엇이든 내세에서 참고 살아가자'는 불교식 세계관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음 생이 아닌 지금 세상이 먼저이다. 다음 생까지 생각하기에는 미얀마인들의 지금 생이 너무나 힘들다. 마하 간다용 수도원의 끝없는 탁발 행렬은 미얀마인들의 삶에 큰 의미 없는 단순한 종교의식일 뿐이었다. 종교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믿음만큼 그들에게 구원의 길이 만들어지길 빈다.


만달레이 힐에서 보는 전경
불교 경전을 모신 흰 파고다 보인다.
불교 경전을 모신 꾸도더 파고다
마하 간다용 수도원의 탁발식
우 뻬인 다리 - 인근 마을의 주민이 수도원에 시주한 다리이다.
시골 사원은 미얀마인들의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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