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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May 17. 2016

보고 싶지 않지만 보아야 하는 것

프놈펜 2014년 10월 10일

보고 싶어 가는 곳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지만 봐야 하는 것이 있다.

킬링필드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캄보디아 내에 300여 개의 킬링필드가 있고 그중 충에크 킬링필드가 가장 큰 곳이다. 이 곳에서만 3년 동안 2만 명이, 많게는 하루에 300명이 학살당하였다. 총알 값이 아깝다며 맞아서 찔려서 또 다른 많은 방법으로 자행된 학살이다.


1975년 4월 17일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가 권력을 잡고 3년간의 집권 기간 중 국민의 1/3이 학살당했다. '4월 17일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미국 괴뢰정부 '론놀'에 대한 부역 혐의라고 했지만 지식인, 외국어 구사자, 손이 부드러운 사람, 안경을 쓴 사람, 승려, 도시 거주자, 고문에 의한 무작위, 반항하는 자, 명령을 거부하는 군인들, 이런 것들이 그 희생의 이유이다. 공식적인 재판도 아무런 기록도 없이 어느 날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어로도 설명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으면 우울해진다. 아이들의 다리를 잡고 머리를 나무에 때려죽였다는 'Killing Tree'를 보는 마음은 우울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너를 살려두는 것은 도움이 안 되지만 너를 죽이는 것은 손해 될 게 없다.", "실수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실수로 적을 살아 남기는 것보다 낫다.", "잡초를 뽑으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폴 포트가 했던 말들이다. 


어린 시절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 그 영화는 '폴 포트가 이끌었던 크메르루주', '200만 명', '공산주의 체제 건설한답시고'라는 단어들을 가슴에 새기는 역할을 하였다.


캄보디아 민간인 학살은 모두 150~160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1969년~1973년'의 1기와 '1975년~1979년'의 2기로 구분된다. 2기에 크메르루주가 자행한 부역 민간인 학살이 10만 명 정도이고 질병, 기아로 숨진 희생자가 70~80만 명에 이른다. 


질병, 기아로 인한 사망자는 미국이 국제기구들의 대 캄보디아 구호사업을 차단해 버린 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70만 명 정도의 1기 희생자는 미군의 잘못된 폭격에 의한 것이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 도중 베트콩이 피신할 우려만으로 캄보디아의 많은 마을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였다. 


그나마 지역 NGO의 지원으로 빈민가 청소년들이 하는 공연인 플라에 프카(열매)를 관람하며 조금의 위안을 받는다. 공연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이 받는 아주 적은 출연료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 대신 학교를 갈 수 있게 해 준다. 


충에크 킬링필드의 추모탑
곳곳에 희생자의 유골이 발견되고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수습하고 있다.
Killing Tree
시민들은 추모하는 마음으로 팔찌를 두고 간다.
학살에 이용된 도구들
왕궁
국립박물관
유물들의 보관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거의 아무런 보호 장비가 없이 전시되고 있다.
메콩강가에는 커다란 건물들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플라에 프카 - 빈민가 청소년들이 매일 공연을 한다. 저가의 출연료는 그 가족의 생활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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