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2014년 11월 22일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눈에 다 넣을 수 없는 강변 풍경과 그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들
종교 음악, 새소리, 아이들의 놀이 소리
빨래하는 남자, 엄숙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몸을 씻는 사람들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다.
힌두교도는 바라나시에서 화장을 하면 더 이상의 윤회를 하지 않고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그 믿음 하나가 이 도시 전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 같다. 인근 건물들이 대부분 외지인 소유이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세입자들이다.
부자들이 갖는 헛된 욕망은 이곳에 수많은 가트(사원)를 만들었고 그 가트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바라나시에서의 화장으로 윤회를 끊기를 바라는 이들이 끝없이 이 곳에 모이고 있다. 고인이 사망하고 하루 내에 화장을 하기 때문에 바라나시에서 화장을 하고 싶다면 하루 내에 시신을 옮길 수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
'인도가 가지는 중첩된 이미지를 모두 품고 있는 3,000년 고도',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철학의 나라가 아니라, 철학을 하게 만드는 곳',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 등 수없는 수식어의 도시이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에는 공감할 수 없다.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편협한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도의 찬란한 역사를 지우고 종교만을 남기는 것이다.
제사가 끝난 가트 한쪽에서 벌어진 젊은 청년들의 댄스 배틀을 보았다. 또 드넓은 부지 위의 베나레스 대학에서 밝은 표정의 대학생들 모습을 보았다.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두 달라야 한다. 그 들 중 몇이 더 빛나는 인도를 만들 거라 기대해 본다.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머물며 가장 자주 간 곳이 작은 화장터인 하리시 찬드라 가트이다. 이 곳이 좋은 이유는 돈과 권력과 계급이 없는 곳이라는 느낌이다. 큰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는 장작의 크기가 빈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이곳은 대부분 비슷하다.
의식을 치르는 가족은 거의 남자들이다. 떠나는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면 미련 때문에 하늘로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눈물 한 방울 없는 장례식을 본다. 시신이 타는 모습을 본다. 장작 위에 그대로 놓인 시신은 불이 강한 허리 부분이 끊어지고 남는 다리 부분을 나무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남는 재를 어머니의 강에 넣는다.
14세 이하의 아이, 임산부, 수행자, 뱀에 물려 죽은 자, 동물은 화장을 하지 못한다. 그냥 돌을 매달아 강에 넣는다. 날씨가 더워지면 부패하던 시신이 떠올라 강 위에를 떠 돈다고 한다. 뱃사공들은 그 시신들을 그냥 강 건너편에 밀어둘 뿐이다. 이 곳 사람에게 시신에 대한 의미는 그 정도의 의미이다.
그들이 시신을 들고 입장하며 외치는 '람람 사뜨헤'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람람'은 몸, '사뜨헤'는 진리라는 뜻이다. '진실된 몸'이 아니라 '몸은 거짓이고 신의 이름만이 진실이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13일 동안 소금, 기름, 계란, 고기, 생선이 포함되지 않는 음식을 하루 한 번만 먹는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것이다.
종교를 떠나 화장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끝을 생각하고 그다음을 생각하고 다시 삶 생각하고... 다음 생을 생각하지 않는 나는 결국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