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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May 29. 2016

위대한 영혼 간디

델리 2014년 12월 5일


위대한 영혼 간디

그의 그늘도 함께 보자.


우리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보다는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이 붙인 별칭이다. 또한 '자유의 전령사' '온화한 거인' '비폭력 사도' '사회의 예언자' '거룩한 존재' 등 그 외에도 그의 별칭은 많다. 


인도 독립운동의 정치적 원동력이었던 간디는 인류의 정신적 좌표로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이미 '인도의 아버지'가 아닌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인도인 기자가 쓴 기사에서 그는 적어도 노동자들에게는 히틀러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국가'를 바라보는 간디의 눈과 '개인'을 바라보는 간디의 눈은 달랐다. 자신이 주장했던 이상들과는 달리 성(性)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사회, 문화, 정치 문제에 대해서 자주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는 '협력과 조정'만을 주장하다 결국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결과들을 만들었고 극빈층이 자신들의 정체성 주장하던 '달리트 운동'에는 단식을 하며 반대하였다. 비 종교주의를 내걸고 람(힌두)과 라힘(이슬람)이 하나 되자고 외쳤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이 이슬람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간디는 확실한 사회 개혁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공동체를 창조하고 독립 후 인도에서 식민통치자들을 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계급과 그 집단들을 용인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라는 차원만을 강조하였다. 


인도라는 국가 건설이 노동자의 인격과 자유에 우선한다고 간디가 강조하는 동안 노동자, 여성의 인권과 평등은 더 멀어져 가고 말았다. 그가 너무나 강조하였던 '엄격주의'와 '금욕에 대한 강박관념'은 카스트 계급제도와 여성 인권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게 하고 말았다. 


간디는 큰 지도자였고, '압제로부터 해방' '풀뿌리 민주주의' '비 종교주의' 같은 국가를 위해서 외친 이상들은 인류에게 남아 있다. 간디주의 유산이 의심할 여지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의 심장이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의 유산도 함께 이야기하며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그의 유산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간디가 남긴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이 1930년대의 인도가 아닌 오늘날 우리가 성찰할 문제인 것만 같다. 자신의 삶으로 길을 제시하는 분들의 마지막이 암살로 끝나는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은지 안타깝다. 


Seven Social Sins


원칙 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s

노동 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교육         Knowledge without Character

인간성 없는 과학      Commerce without Humanity

희생 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국립 간디 박물관
라즈 가트 - 간디 추모 공원
간디를 화장한 곳 - 그를 기리는 불꽃을 두었다.
레드 포트
부속 학교를 갖고 있는 작은 사원 - 이렇게 홀로 기도하는 모습이 더 좋았다. 
찬드니 촉 - 물품별로 블럭으로 구분되어 있는 시장 거리. 향신료 시장이 가장 볼만 하다.
헌책방 거리 - 국내에서 2000대 초에 쓰였던 프로그램 언어 책들이 유난히 많다.
아이들은 어느 곳이나 사랑스럽다.
델리의 유명한 식당 거리
코넛 플레이스 주변의 야시장
악샤르담 입구 - 최대 힌두 사원이며 건축물과 조각상들이 너무 아름답지만 카메라, 휴대폰 모두 반입 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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