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2015년 2월 15일
돈키호테가 되고 싶은 햄릿
게르니카를 보며 피카소의 마음을 느껴본다.
돈키호테의 나라에 왔다. 코르테스, 피사로도 있지만 그래도 돈키호테의 나라로 기억하고 싶다. 코르테스와 피사로의 역사는 너무나 잔인한 것이다.
400년 전 1616년 4월 23일에 두 명의 소설가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햄릿과 돈키호테를 만든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이다.
세상에는 ‘돈키호테 형'과 '햄릿형’의 사람들이 살아간다. 돈키호테는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겠다 외치며 돌진한다. 현실 밖의 삶을 추구하는 이상형 인간이다.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은 고민 안에 갇혀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가 될수록 햄릿과 같은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왜일까? 정보의 과잉 시대이고 선택할 것들이 한계를 넘어서는 시대가 되었다.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해야 하고 직장에도 결정을 못하는 결정장애가 유행하고 있다. 소비 상품의 과잉이 낳은 '햄릿 증후군'이다.
'무언가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골든타임은 계속 짧아진다.', '훌륭한 뱃사람은 거친 바다가 만든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모든 것을 할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 '현세에 성공하고자 한다면 햄릿이 되기보다 돈키호테가 되어라.' 이런 구호들이 들리고 햄릿이 많아질수록 더 돈키호테를 그리워하게 되는 듯하다.
돈키호테의 고향은 스페인이고 햄릿의 고향은 덴마크이다. 따뜻한 곳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행동형'이 많고 추운 지방에는 '사색형'이 많다고 한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경계에 서 있는 나라이다. '할 수 있다. 해보자'는 기독교인도 많고 조용한 곳에서 묵상을 하는 불교인도 많은 나라다. 문제는 '자기 것만 옳다'하고 자신과 다른 주장을 모두 이단시하는 성리학적 배타성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돈키호테도 필요하고 햄릿도 필요하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아닌 서로 조화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돈키호테가 되고 싶은 햄릿', '햄릿이 되어 보는 돈키호테'가 되어 살아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드리드는 그림의 도시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을 그림은 소피아 미술관의 '게르니카'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에 프랑코파를 지원하던 나치가 게르니카라는 도시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의 2대 걸작으로 꼽힌다.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파의 승리로 결정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이 그림의 스페인 반입을 거부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는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스페인에 들여왔다.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인터넷에서 퍼온 그림의 묘사이다.
피카소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개인적인 궁금함이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없고 느낌만을 가지고 간다. 사진 촬영은 금지지만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먼 곳에서 플래시 없이 찍어 본다. 이 그림의 주변에만 사람들이 많다.
너무나 좋은 위치 때문에 많은 침략과 부침을 당한 나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 곳 사람들은 활기차고 밝아서 여행객의 마음도 밝아지는 듯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