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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n 08. 2016

대항해 시대의 영광

리스보아 2015년 2월 13일

대항해 시대의 영광과 대지진의 아픔을 맛본 포르투갈 수도

아직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그리며 살고 있다.


한 때 모험심과 야망을 가진 탐험가들이 바다를 향하던 꿈과 희망의 도시였지만 이제는 유럽의 변방이 되었다. 사람들의 무뚝뚝한 표정은 왠지 한국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구시가지의 모습에서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이슬람 흔적이 이채롭긴 하지만 1755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한다. 도시의 2/3을 폐허로 만든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지만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라졌다.


애덤 스미스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와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해’를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유럽에게는 희망을 주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주민들에게는 고통이 되어 버린 이 사건이 유럽이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진입한 시발점이 된다.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은과 향신료들이 자본의 과잉을 만들며 저렴한 자본의 축적을 늘려갔다. 또 한 가지 유럽의 근대화를 가져온 큰 이유는 유럽 국가의 빈민층과 범죄자들이 신대륙으로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은 늘어나고 값싼 노동력을 갈수록 사라져 갔다. 자본의 과잉과 노동력 부족이 결국 계급 간의 타협을 만들고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바스코 다가마가 리스본을 출발한 것은 1497년 6월이었다. 11월에 희망봉을 돌고,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상륙한 것은 이듬해 5월 20일이다. 괴혈병, 폭풍, 그리고 선상반란의 위협을 이겨내고 엄청난 후추를 싣고 1499년 리스본으로 돌아온 그는 막대한 이익을 남기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재산과 더불어 귀족의 지위까지 부여받은 그는 탐험가의 대명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만 '영웅'이었다. 1502년 다시 캘리컷에 간 그는 인도인들을 학살하고 조각낸 시신들을 캘리컷의 왕에게 보내며 “카레를 만들라”라고 비아냥거렸다. 현지인들에게는 ‘악마’ 일 수밖에 없었다.


1998년은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에 상륙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인도와 포르투갈에서는 각각 기념행사가 있었다. 리스보아는 대대적인 축하행사가 벌어졌으나, 인도는 바스코 다가마의 인형을 불태우고 검은 깃발을 들며 항의 행진을 했다.


리스보아에 바스코 다가마 다리가 세워진 것도 1998년이다. 테주강 위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17.2km의 길이를 자랑하며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 중 하나이다. 이 거대한 다리에 바스코 다가마의 이름을 붙여주며 포르투갈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거의 영화를 그리는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아닐까? 


1960년에는 해양왕 엔리케의 사후 500년을 기념하여 '발견의 탑'이 세워졌다. 그 기념비가 세워진 곳이 바로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났다는 바로 그 자리이다. 범선 모양을 한 이 기념비에 많은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뱃머리 맨 앞에 해양왕 엔리케가 서 있고 그 뒤를 바스코 다 가마와 서사시인 카몽이스를 포함한 모험가, 선교사들이 따르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광장의 대리석 바닥에는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나라들을 표시한 세계지도가 새겨져 있다.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 라틴 아메리카 등 아직도 산업혁명의 결실을 받아 안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다. 인류 전체가 소비하는 재화보다도 많은 것들이 이 지구에는 계속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그 나라들은 인구의 50%가 넘는 빈민층을 껴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다. 유럽의 그 시대와 같은 저렴한 자본의 공급과 빈민층 유출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누군가의 피의 대가를 다른 이들만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럽의 첫 도시라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왔지만 이전의 길에서 만난 이들이 내 마음에 더 남아 있는 듯하다. 유럽의 서쪽 끝을 밟았다는데 의미를 두어야 할 듯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출발해서 그 반대 끝까지 왔다. 


로시오 광장 - 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다.
알파마 지구 - 대지진의 피해가 비켜가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코메르시오 광장 - 지진으로 무너진 궁전 자리에 만든 광장. 주변 건물들이 지금은 모두 정부 건물로 쓰이고 있다.
상조르제 성
제로니모스 수도원
벨렘탑 -  밀물 때 1층에는 물이 들어와서 수용되었던 죄수들을 고문하던 감옥이다.
발견의 탑
희망봉 발견 후 20년이 안 되어 아시아의 거의 모든 땅을 찍은 듯하다.
바스코 다가마 다리
공연이 있는 거리는 항상 좋다.
가장 번화한 거리인데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
리스본에서 기차 30분, 버스 40분 거리이다.
바다도 항상 좋다.
호카곶을 가며 들린 Sintra라는 작은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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