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2014년 8월 20일
두보, 제갈량, 유비, 관우, 장비를 만나고 왔다.
시의 나라에 와서 두보를 만나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두보와 이태백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을까?
제갈량은 출사표를 쓰며 무슨 각오를 했을까?
공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라 했다. ‘마음에 간사한 생각이 없는 것이 시’라는 뜻이다. 아들 공리에게는 '시를 읽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아 더 나아가지 못한다'라 했다 한다. ‘알아야 면장(面墻)을 하지’라는 고사의 유래이다.
중국을 시국(詩國)이라 하고 이태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한다.
이태백은 천재라 하지만 두보는 죽기 전에는 알아주는 이 없어 장강을 떠돌다 죽음을 맞이했다.
중국 시의 형식을 만든 사람이라고까지 이야기되는 두보가 가장 행복했다 회상하는 시절이 친구 아들에 의탁해서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살던 4년이다.
'꽃길을 손님 때문에 청소하고 싶지 않다'
그 꽃길의 끝에 두보의 초가집 '두보초당'이 있다.
그의 시 하나를 찾아보며 그를 기억하려 한다.
석호의 아전(石壕吏) - 두보
저녁에 석호촌에 투숙하니
아전이 밤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늙은 노인 담 넘어 달아나고
늙은 할미 문에 나와 본다
아전의 호통은 어찌 그리도 노여우며
할미의 울음은 어찌 그리도 괴로운가
할미가 앞으로 나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셋째 아들은 업성에서 방비를 서고
첫째 아들이 부친 편지가 왔는데
둘째 아들은 새로운 싸움에서 죽었다 하네
산 사람도 겨우 삶 이어가고
죽은 자는 영영 그만이라오
집안에 다시 사람이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만 있을 뿐이네
손자 있어 어미는 떠나가지도 못하고
출입할만한 성한 치마도 없다네
늙은 할미 비록 기력은 떨어졌으나
부디 아전 따라 밤에 돌아가리다
급히 하양의 부역에 나가면
오히려 새벽밥은 지을 수 있다네
밤 깊어 말소리 끊기니
눈물 흘리며 속으로 우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날이 밝아 예전 길에 오르니
할미 홀로 늙은 노인과 작별했네
후에 정약용은 이 시를 차운해 '용산촌의 아전'이라는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