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2015년 3월 5일
천재의 자취를 느끼고 간다.
한민족의 천재들은 모두 어디 있는지?
천재의 자취를 느끼고 간다. 다만 며칠의 체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느낌이 드는 도시다. 아마도 가우디의 작품을 하나 더 볼 때마다 도시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까? 도시 전체가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내고 후원하고 보존, 발전하는 것 같다. 가우디의 건물이 특별하기도 하지만 그 건물이 그곳에 있는 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변의 거리와 건물도 나름 모두 자신들의 가치를 갖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안토니 가우디는 개성 넘치는 창의력으로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조한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최초의 작품인 가로등부터 공동 주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카사 밀라, 자연 친화적인 주택 단지 구엘 공원, 빛의 질서를 보여 준 구엘 저택, 그리고 아직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이르기까지 가우디의 대표 작품은 모두 바르셀로나에 남아 있다.
가우디는 건축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한편으로는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우디는 원칙 하나를 정하였다. 가능하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건축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로를 만들 때도 자연 파괴를 줄이기 위하여 등고선을 따라 만들었고, 커다란 웅덩이와 능선 사이도 흙으로 메우는 대신에 육교를 놓는 방식으로 땅의 모양을 유지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스스로 개성이 넘치는 도시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시민들이 이런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정성을 쏟아부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납골당에 가우디의 시신이 잠들어 있고 오늘도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지켜보고 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에우세비오 구엘 남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엘은 처음 가우디를 만난 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40년 동안이나 가우디의 적극적인 후원자이자 친구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엘은 막강한 경제력과 뛰어난 안목이 천재의 능력을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머리 좋기로 손꼽힌다는 한민족의 천재들은 모두 어디 있는지? 공부 잘하는, 말 잘 듣는, 착한(또는 그런 척하는) 그런 똑같은 인간들이 되어 적당히 성공하고, 적당히 눈치 보며, 적당히 누리다가 그렇게 전부 고만 고만하게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자신의 가치 없이 모두 똑같은 자로 재는 성공이 과연 성공인지, '성공한 노예'는 과연 '노예'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천재를 알아보고 그 천재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