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 2015년 2월 27일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아니 엽기적인 광장이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된다.
1994년 마라케시에서 열린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각료회의에서 '마라케시 선언'을 채택했다. UR(Uruguay Round: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종결과 함께 WTO(World Trade Organization:세계 무역기구) 체제 출범을 선포한 것이다. 국제 무역을 조정하는 기구의 경제 기조가 케인즈 이론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되었다는 신호이다. 이 날 이후 우리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모두가 이 단어를 사용하고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따라 케인즈 이론에서의 완전고용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대체되었고, 정부가 관장하거나 보조해오던 영역들이 차차 민영화되었다. 자유방임 경제를 지향함으로써 비능률을 해소하고 경쟁시장의 효율성 및 경쟁력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불황과 실업, 그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시장개방 압력으로 인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 초래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자유방임 경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냈다. 어른과 아이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싸우게 된 것이다. 그 무한 경쟁의 조건을 국제 무역이 아닌 국내 경제와 삶에도 똑같이 적용하고자 하는 나라도 있다. 어쨌든 마라케시는 'WTO'나 '신자유주의'를 논의할 때 본의 아니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선진국의 이득을 만드는 협정이 선진국의 안방이 아닌 이 아프리카 땅에서 결정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중부에 있는 도시로 모로코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지명은 아랍어로 '서쪽 지방에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오아시스 도시로 모로코와 알제리에 이르는 대상로의 기점으로 대상인들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었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사하라 사막이 시작된다. 로마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던 아틀라스가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 돌이 되었다는 바로 그 아틀라스이다. 로마인들은 이 곳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한 것이다.
바로 그 느낌이다. 이 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력을 갖은 듯한 붉은 도시, 모로코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이고 혼란스러운 도시이다. 마라케시의 중앙 광장인 제마 엘프나(Djemaa el Fna)에 도착하면 모두 놀라게 된다. 사람 구경하러 이 먼 곳까지 온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에 오면 누구나 사람 구경에 빠져든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종들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를 마주하러 오는 곳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간 행위가 있고 지구 상 모든 상품이 판매되는 곳이다. 천년 전의 이슬람 가구부터 어느 아낙이 어제저녁 만들었을 듯한 가죽 신발 바부쉬까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손짓한다. 바로 모로코의 심장이라는 마라케시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아니 엽기적인 광장이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된다. 사기, 야바위, 호객행위, 연극, 악사, 뱀쇼, 불쇼 등 별의별 짓들이 행해지고 수크(시장)는 끝없이 이어진다. 별의별 것들을 판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돈을 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 돈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갖가지 방법의 바가지와 희한한 계산법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적당히 바가지도 써줘야 한다는 것도 여행이 길어지며 배운 한 가지다. 안 쓰려해도 쓰게 되고 안 쓰려하면 할수록 본인만 피곤해지는 것이더라. 써봐야 얼마나 된다고... 어차피 길이 익숙해지고 그 동네 물가에 익숙해지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옥상에 올라 고개를 돌리면 4천 미터의 아틀라스 산맥이 마주한다. 미로와 같은 거대 도시를 모두 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도 이 도시를 모두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저 갈 수 있는 곳까지, 볼 수 있는 것까지, 인연 있는 것만 느끼고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