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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n 12. 2016

길을 잃고 헤매어 보자.

페스 2015년 2월 25일

1200년 전의 이슬람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

길이 없는 듯 있는 곳이다. 지도가 없는 우리 인생길이 이 미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30년 여행객 이븐 바투타의 마지막 기착지이다. 또 세상의 여행자들이 길을 잃기 위해 찾아드는 도시이다. 유럽의 암흑기였던 중세 시대에 이슬람은 찬란한 지성의 탑을 쌓았다.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던 이 곳 페스는 이슬람 지성의 중심지였다. 세계 최초 대학이 있었던 이 도시에서 수많은 철학자,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새로운 길을 찾았고 길을 만들고 있었다. 


구시가지 메디나는 1200년 전의 이슬람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메디나를 특별하게 하는 건 세계에서 가장 길고 복잡한 미로 같은 골목길이다. 14세기에 조성된 미로는 지금도 수백 년 전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 지도는 쓸모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으면 된다. 좁디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정감 있는 수크(시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학교, 염색공장 등이 계속 이어진다.

 

메디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곳은 염색공장이다. 메디나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이드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테너리(염색공장), 테너리”를 말하며 다가온다. 하지만 이 곳은 길을 잃어야 하는 곳이다. 지도도 휴대폰의 GPS도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헤매고 묻고 물어서 도착한 도착한 염색공장은 냄새가 이끈다. 비둘기 똥, 소의 오줌, 재와 같은 천연 재료를 염색재료로 쓰고 있어 이곳의 냄새는 너무나 독하다. 인근 지역에 도착하면 눈이 아닌 코가 인도한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무역 도시였던 페스는 수천 년 전부터 가죽을 생산해왔다고 한다. 세상의 여성들을 유혹하는 명품 가방의 고향이 바로 이 곳이다. 세계 최고 품질로 불리는 페스의 가죽은 수작업을 통해 털을 벗기고 무두질을 하고 염색하는 모든 작업이 지금도 중세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빨갛고 노란 원색의 가죽들이 이 곳의 가난한 작업자 손에 의해 만들어져서 유럽인들의 배를 불리고 욕심 많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채우고 있다. 


페스의 메디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이방인의 권리이자 재미거리이다. 하루쯤은 방향을 정하지 말고 지도를 버리고 골목골목을 방황해 보자. 길이 없는 듯 있는 곳이다. 지도가 없는 우리 인생길이 이 미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길을 잃자. 길을 잃는 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길을 잃어보아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라바트로 이전하기 전의 수도이자 지금까지도 국왕이 사는 도시이다. 염색 공장과 메디나만 걷다 가기엔 아쉬운 곳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흥미가 적어지는 것을 보면 몸도 휴식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메디나 안의 숙소 옥상에서... 유선 케이블 작업이 불가능한 곳이다. 안테나들이 빼곡하다.
수크 안의 먹거리들
메디나 안의 우물
페스는 금속공예로도 유명하다.
Al Qaraouiyine 모스크 - 들어가지는 못 한다.
태너리
Al Andalous 모스크
길가에서 파는 가방들 - 대부분 이미테이션이다.
골목 안 모습들
메디나 안 광장
메디나 안에 있었던 숙소 - 옛 이슬람 양식이 남아 있다.
기차역 앞 신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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