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015년 3월 9일
'무엇을 하지 마라'가 가장 적은 곳
피로 쓰고 피에 물든 프랑스 대혁명
즐겨 듣는 팝캐스트 방송의 진행자들인 김어준, 주진우, 탁현민이 지난 대선 이후 쉬었다는 곳 파리다. 쉬었던 곳인지 피신한 곳인지는 알 수가 없다.(망명도 고민했었다고 한다.) 나도 한 번 쉬어가 볼까 하고 한인 민박 7박을 예약하였지만 파리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쉬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어디론가로 나서게 된다. 8일의 시간은 파리를 느끼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파리지앵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자꾸 무엇인가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도시이다. 철학자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미술의 도시이기도 하며 피로 쓰고 피에 물든 민주주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인가 다른 것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곳이다.
며칠 지내며 혼자 내린 결론은 이 곳은 '하지 마라'가 가장 적은 곳이지 않을까? '어, 저래도 되나?' 하는 건 나의 편협한 생각일 뿐 이 곳 사람들은 자유롭다. 아무 곳에서나 음주, 흡연을 하지만 쓰레기는 보이지 않고 보행자의 무단 횡단은 거리낌 없지만 차량들의 신호 위반은 볼 수 없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공원에서 책을 보고, 이야기하고, 퍼질러 자고, 키스하고, 술 마시고, 또 먹고, 담배 피우고, 연주하고, 그림 그리고, 멍 때리고, 달리고... 그냥 모든 것을 한다. 무질서한 것 같지만 우리와 다른 수준에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듯하다.
우리는 이 도시에 빚이 있다. 1789년 7월부터 1794년 7월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대혁명이 있었다. 절대왕정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전환이 되는 시발점이다. 프랑스혁명은 시민혁명의 전형이지만 부르주아 혁명(계급으로서의 시민혁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 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하여 일어선 혁명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 평화로운 혁명이 아니라 피의 혁명이다.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1,340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프랑스인에게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온 것이 아니다. 파업으로 공항이, 고속도로가, 도시가 마비되어도 이 곳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이 파업의 권리를 외치고 경찰도 파업을 하는 곳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피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하다 재정이 망가지며 프랑스는 대혁명을 맞이했다. 혁명의 이유는 '누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였다. 90%의 평민만이 세금을 내고 왕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는 그 평민의 근로와 세금에 기생하던 시절이었다. 모순은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였다. 지금은 과연 그 시절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문화재 약탈의 최강자인 프랑스이기에 파리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곳은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은 시간 여유를 갖고 방문하길 바란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많이 걸어야 하는 장소이다. 두 곳을 하루에 방문하는 것은 꼭 보아야 할 것들을 빠뜨릴 우려도 있지만 몸의 피로가 많다. 문화재나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 하나만으로도 며칠 일정을 잡는다.
이집트의 국립 박물관보다 더 많고 더 뛰어난 파라오 유물들을 파리에서 보아야 하는 것은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