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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n 15. 2016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바티칸 2015년 3월 23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아테네 학당'

성당의 성스러움이나 엄숙함이 아닌 그림에 압도되었다.


'교황 율리오 2세와 나 미켈란젤로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불화는 라파엘로와 브라만테의 질투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들은 교황을 속여 무덤을 세우는 계획을 중지하도록 시켰다. 라파엘로도 충분히 이런 일을 꾸몄을 것이다. 왜냐하면 라파엘로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흔 살을 내다보는 늙은 미켈란젤로가 과거를 회상하며 쓴 것이라고 한다. 이미 20년 전에 라파엘로가 죽었지만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를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긋난 것은 바로 두 사람이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아테네 학당'이라는 걸작을 만들던 시기였다. 


1508년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같은 해 가을에 교황은 라파엘로를 불러들여 미켈란젤로의 옆방에서 일을 하도록 하였다. 라파엘로에게 자신의 집무실 벽면에 벽화를 그리게 한 것이다. 100미터 안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둘은 숙명의 대결을 벌여야 했다. 


걸작들이 완성되고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인정하였다고 하는데 미켈란젤로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로마 속의 또 다른 나라인 바티칸이다.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아니라 미켈란 젤로와 라파엘로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성당의 성스러움이나 엄숙함이 아닌 그림에 압도되어 돌아왔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아테네 학당' 두 그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다. 


박물관이 일요일 쉬는 것을 모르고 가서 산 피에트로(베드로) 대성당 들어가는데 2시간 반을 기다리고, 이틀 밀린 관광객 때문에 월요일 박물관 앞에서 3시간 반을 기다리다 지쳤다. 하지만 두 그림을 보고 나서 그 고생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바티칸 박물관 위 두 명의 석상이 바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이다,
아테네 학당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수학자들을 그린 그림이다. 중요 인물의 얼굴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데 플라톤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아리스토텔레스에 자신의 조수 얼굴을 넣었다. 왼편 계단에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얼굴이 미켈란젤로이다. 라파엘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완성작을 본 후 미켈란젤로를 인정하고 추가로 그려 넣은 것이라 한다. 


플라톤은 아테네 학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티마이오스'를 들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진실한 세계는 하늘에 있으며 그 세상이 신비한 이데아 세계임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왼손에 '니코마스 윤리학'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세계의 본질은 하늘 위가 아니라 현실의 경험 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기둥 옆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라파 엘로이다. 그림을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저 눈과 마주치는 기분이 든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가이드들은 이 안내판 앞에서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에게 20분 정도의 설명을 한 이후에 투어를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지창조'는 이 천정화의 작은 일부일뿐이다.


라오콘 상
아폴로
지도의 방
그리스도의 변용 -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산 피에트로 성당 (베드로 성당)
일요일에는 교황님이 창문에 나와 간단한 미사를 하신다.
베드로 성당 내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교황이 선출되면 위의 문으로 나와 처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광장 주변 기둥과 기둥 위의 조각을 하는데 12년이 걸렸다 한다.
모든 이들이 도망을 가고 스위스 용병만 남아 교황을 피신 시킨 후 바티칸의 근위병은 스위스 사람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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