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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n 20. 2016

보헤미안의 삶을 그리며

프라하 2015년 4월 1일

보헤미안의 자유와 낭만을 그려본다.

하지만 자유는 자신이 초래한 고통의 크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이다.


체코 서부를 보헤미아 지방이라고 부르며, 수도 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중심 도시다.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 부르게 되었다. 보헤미안(Bohemian)의 사전적 의미는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이다.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보헤미안의 이미지는 아마도 '자유'와 '예술'일 것이다. 그러나 유럽인에게 집시의 이미지는 '거지'와 '도둑'의 중간 정도이다. 우리가 동경하는 보헤미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천년의 건축사를 간직한 프라하는 중심가 전체가 유네스코 역사지구로 등재되어 있다. 프라하 곳곳을 돌아보면 오래됨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도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300년 이상 받았고 나치와 공산 시대를 겪었다. 또 1968년 프라하의 봄에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탱크 앞에 비폭력으로 맞서야 했다.


체코는 400년에 가까운 기간을 그렇게 보냈다. 자신들을 지켜줄 나라도 없었고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며 살았던 것이다. 상황과 타의에 의해 집시가 되어간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은 그렇게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사전에는 자유를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 하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우리는 대부분 바라는 것이 아닌 바람직한 것들을 하며 산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들을 하며 산다. 좋아하는 것이 아닌 좋은 것들을 하며 산다.


또,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어야 했고, 상관의 명령을 잘 듣는 부하여야 했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돈 잘 버는 아버지로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자신이 바라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간다.


철학자들은 자유를 2가지로 구분한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란 ‘타인에 의한 간섭의 부재’라는 소극적인 기준에 의해 자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란 ‘자기지배’(자기 결정)라는 의미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이 ‘2가지 자유’는 각각 ‘~로부터의 자유’, ‘~로의 자유’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 개념으로만 자유를 생각하고 싶어 한다. '내가 이 것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한다. 끈 위에 사는 순간은 자유롭지 못하다. 끈을 자르고 난 이후에야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의 이면은 고통이다.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선택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가 바로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장권일 수도 있다. 사회는 입장권을 버린 사람에게 사회의 보호도 거두어 버린다.


고통의 범위는 1차적으로 본인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까지 번진다. 결국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와 같이 커다란 존재가 아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초래한 고통을 긍정할 수 있을 때까지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욕망과 신념의 크기까지이다. 자신이 바라는, 하고 싶은, 좋아하는 만큼만 감당할 수 있다.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냥 사회의 모범생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자신에게 금지된 것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여행은 아니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디어 내는 삶이 싫어서 끈을 먼저 끊어 버리고 시작한 여행이다. 무엇을 바라는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여행을 통해 찾아보고 싶어 시작한 여행이다.


프라하 출신이며 대표적인 실존주의 소설가인 카프카는 생전에 보헤미안을 '고독을 사랑하여 고독에 미친 인종'이라 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오는 고통이 바로 그 '고독'이다. 여행 기간 동안 대부분 혼자였지만 아프리카의 동행들과 헤어진 후 더 크게 느끼는 고통이다.


남이 시키는 것은 하고 싶다가도 싫고,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아직 나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 듯하다. 남에게 보이지 못하는 욕심 덩어리가 내 안에 가득하다.


로마의 미술, 빈의 음악과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면 현대 문학을 위해 카프카 박물관을 가야 했지만 가지 못했다. 카프카의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소설 읽기를 즐기지 않는 탓이다. 아무 감정 없이 박물관을 가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아 다음 기회에 글을 통해 그를 느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프라하의 첫 느낌
올드타운 광장
천문시계 - 매시 정각마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올드타운 광장과 틴 성당
화약탑
대극장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성
보헤미안의 도시답게 공연들이 많다. 여학생들의 합창이 좋았다.
짧은 동영상
옛스러운 건물과 강이 어울린 풍경이 좋다.
페트리진 언덕에서의 전경
프라하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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