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려놓기 Jun 20. 2016

오로라를 기다렸지만

이발로 2015년 4월 10일

보고 싶은 만큼 멀리 왔고 기다렸지만 끝내 오로라는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거대한 수소 덩어리인 태양은 기체도 액체도 아닌 프라스마 상태이다. 지구는 남극에서 나온 자장이 북극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만 태양은 수 없는 자기장의 방향이 얽혀 있다. 그 자기장의 요동으로 태양은 항상 양성자와 전자 등으로 이루어진 대전 입자들을 방출한다. 


태양이 내뿜는 이런 대전 입자의 흐름을 태양풍이라 하는데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풍의 일부가 지구의 자기장에 붙잡힌다. 붙잡힌 태양풍은 지구 자기장을 따라 극지방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대전 입자들이 대기 중의 공기 분자들과 충돌하며 빛이 나는 현상을 오로라라고 한다. 자극에 가까운 북극, 남극에 가까운 극지방에서 관측하기가 쉽다. 오로라의 원리이다.


베를린 - 리가(라트비아) : 비행기 1시간 50분

리가 - 헬싱키 : 비행기 1시간 30분

헬싱키 - 로바니에미 : 기차 13시간

로바니에미 - 이발로 : 버스 5시간


핀란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위도의 도시 '이발로'이다. 보고 싶은 만큼 멀리 왔고 기다렸지만 끝내 오로라는 자신을 보여 주지 않았다. '첫째 날 흐림, 둘째 날 눈, 셋째 날 비, 나흘 째 흐림' 4일 동안의 밤 날씨다. 맑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개었다가 다시 눈이 오기도 하는 날씨이다. 


태양이 몸부림쳐야 하고 그 몸부림의 잔재가 도착할 때가 밤이어야 하고 구름이 없어야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더 기다리면 볼 수는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낮은 점점 길어진다. 이 곳은 6월이 되면 밤이 사라지는 곳이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4월 초중순까지이다. 


오로라 예보는 내일부터 3일 동안의 확률이 'Low'라고 하고 날씨도 오락가락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이런 오로라가 아니라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등 수많은 위안거리를 찾는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집착과 안달은 나만 죽이는 것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쉽다는 것이다. 기어이 오로라를 보려면 캐나다를 가야 하지만 예약한 비행기표는 뉴욕행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다른 땅덩어리를 밟는다.


이발로를 출발해서 헬싱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발로에 엄청난 오로라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접했다. 싼 가격에 나온 비행기 표에 혹해서 예매해 버린 대가이다. 오로라는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한다. 남겨 놓는 것이 있어야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다. 


4월의 풍경이지만 눈이 가득하다.
머물렀던 숙소
계속되는 눈
강이 아직 얼어 있다.
녹기 시작하는 강
정오(12시) 정도의 해. 극 지방이라 태양의 고도가 낮다.
출발하는 날 맑게 개인 하늘
오로라를 예보를 하는 앱 화면


매거진의 이전글 산타클로스 마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