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룸, 치첸이트사 2015년 5월 25일
오래전 화려한 장식과 대규모 건축물로 이루어진 대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쳐야만 태양이 멈추지 않는다고 믿었다
툴룸은 마야 유적과 해변, 그리고 석회암 동굴 안의 호수인 세노떼가 유명한 곳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작은 규모의 유적들이 남아 있고 계절 탓인지 깨끗하지 않은 바다가 아쉽다. 사진에서 본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닌 그냥 탁한 바다다. 이 곳의 바다가 좋지 않은 것보다는 다른 곳의 바다가 너무 예뻤던 탓일 것이다.
하지만 세노떼의 맑은 물빛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보이는 것은 작지만 땅 아래로 500km 길이의 동굴이 이어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가 흩어져 있는 것이다. 장시간의 다이빙을 하는지 산소탱크를 두 개씩 메고 들어가는 다이버들도 보인다.
마야 유적지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치첸이트사를 당일 투어로 다녀왔다. 멕시코는 마야, 올멕, 아스텍, 톨텍 등 여러 문명이 탄생한 문명 부자이다. 그중 톨텍과 마야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 치첸이트사다. 이집트나 캄보디아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질 것 없는 대단한 유적들이다. 하지만 가이드 설명에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Victim'이다.
군사적 성격이 강한 후기 유적인 툴룸과 달리 치첸이트사는 7~13세기의 대도시 유적이다. 천문학과 건축기술이 어우러진 마야유적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이름을 올렸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전성기였던 10세기에는 유카탄 반도 전체를 아우르던 제국이었다. 치첸이트사의 석재들이 멕시코 각지와 과테말라는 물론 멀리 온두라스에서까지 모아 온 것이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톨텍 문명의 특징은 대규모 건축물이고, 마야 문명의 특징은 화려한 장식이다. 5세기에 마야의 한 부족인 이트사 족이 이 곳을 처음 건설하고, 7세기 말쯤 떠났다. 300년 후 북부에서 온 톨텍 족이 살게 되면서 화려한 장식과 대규모 건축물로 이루어진 대 도시가 만들어졌다.
톨텍은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쳐야만 태양이 멈추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쉬지 않고 사람의 피와 심장을 바쳤다. 왕의 생일과 휴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의식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목숨을 잃었던 사람이 일 년이면 5만 명, 하루에 150 명, 10분에 한 명이다.
그들은 제물을 구하기 위해 작은 전쟁들을 계속 벌였다. 끝없는 전쟁으로 적들을 생포하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 피와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 제물은 적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부족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공동체와 신을 위해 희생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인간이 제물이 되는 의식은 신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합리적인 목적은 단백질의 섭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그들은 항상 식량이 부족했고 돼지, 소, 말 등의 가축이 없던 아메리카에서 단백질 부족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코르테스가 이 곳을 점령한 이후에도 그런 방식의 단백질 섭취를 멈추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돼지가 들어온 후에야 중단되었다.
서양 문명은 그들이 잔인하고 미개한 문명이기 때문에 죽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진화론을 들어 그렇게 이야기했고 아직도 그런 문화 콘텐츠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멜 깁슨 주연의 '아포칼립스'라는 영화는 대표적인 그런 산출물이다.
이 곳의 문명이 물론 평화로운 문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수백만, 수천만 명을 죽이는 문명이 더 나쁜 것인지 인육을 먹는 것이 더 나쁜 것인지는 나름의 판단일 것이다. 단지 타민족 문명의 발전 여부나 부의 축적 정도가 그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