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커 2015년 5월 27일
느리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곳이고 어쩌면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멈춰진 시간을 즐기다 아쉬우면 상어와 함께 춤을 춘다.
키코커 Caye Caulker, Belize
2주일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나라를 왔다. 1981년에 영국령에서 독립한 가장 어린 나라 중 하나이다.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이고 화폐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장한다. 35만 정도 인구의 작은 나라가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있다.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영어를 쓰는 인구는 소수이고 대부분 스페인어를 쓰는 메스티소(인디언과 스페인, 포르투갈인의 혼혈인)이다.
한반도의 1/10 크기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인데다 국토의 대부분(약 92%)이 산지이고 경작이 가능한 땅은 3% 정도밖에 안 된다. 사회간접시설이 미비하고 허리케인 피해가 빈발하는 등 자연재해에도 취약해 주민 대부분의 생활이 힘겹다.
단 하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카리브해의 멋진 바다이다. 지구의 눈이라고 불리는 그레이트 블루홀이 있는 곳이며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엄청난 관광 상품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 기반 시설과 인프라가 부족해서 이곳을 즐기는 이는 스스로 찾아가는 이들뿐이다.
멕시코의 툴룸 등에서 수도인 벨리즈시티까지 버스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1시간을 더 가면 아주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코커라는 작은 열매가 이 섬에서 자라서 키코커(Caye Cauker)라 불리는 곳이다. 블루홀을 가는 관문이 되는 섬이다. 다시 정글뿐인 북섬을 제외하면 가로 1km, 세로 4km의 섬이다. 게다가 공항이 차지하는 2km를 빼면 실제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1km, 2km뿐이다.
'GO SLOW'
배를 내려서 부두를 벗어나면 작은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와 평화로운 마을은 한산하다. 이 곳에는 바쁘게 살지 않고, 천천히 아주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다.
워낙 작은 섬이다 보니 이 섬에는 자동차가 없다. 몇 대의 전기 골프카가 육지로부터 들여온 물품을 옮기는 화물차와 택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주민과 여행객은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걷는다. 이 섬의 자전거는 특이하다. 브레이크와 자물쇠가 없다. 언덕 하나 없는 작은 섬은 속도를 내야할 필요가 없고 도난을 우려한 필요도 없다.
느리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곳이고 어쩌면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맥주 하나 들고 바닷가 아무 곳이나 그냥 누워서 카리브해를 즐기면 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 누우면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이 반긴다. 하늘은 바다보다 맑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그리는 그림을 즐기다 보면 '이 곳이 바로 천국이구나'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 하늘 사이로 날갯짓도 귀찮은 듯 아니 멈춰진 시간을 즐기는 듯 활공을 즐기는 익룡을 닮은 커다란 새가 있다. 오로지 하늘만을 위해 진화했다는 군함새이다. 바닷가에 사는데 깃털에 기름기가 없고 물갈퀴가 작아서 헤엄을 못 치는 새, 힘이 없는 발은 땅위를 걷기는커녕 서 있지도 못한다. 시속 400km의 속도를 낼 수도 있지만 여간해서는 날갯짓 한 번 하지 않고 연처럼 그저 하늘을 떠 다닌다.
그렇게 멈춰진 시간을 즐기다 아쉬우면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낚시를 떠나면 된다. 그레이트 블루홀의 다이빙 때문에 일부러 찾는 섬이지만 이 섬의 최고 상품은 스노클링이다. 투명한 바다 속 가득한 상어 떼 안으로 뛰어들어 상어를 만지고 상어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경험을 한다.
물론 사람을 공격하는 상아리 종류는 아니다. 이미 인간이 주는 먹이에 반은 길들여져 버렸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생선들을 군함새에게 빼앗기는 어리숙한 놈들이다. 그 상어들과 거북, 커다란 가오리들이 눈 부신 산호 사이에서 인간과 숨바꼭질을 한다.
당분간 다시 만나지 못할 카리브해의 마지막을 즐겼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바다라도 되는 듯 즐겨야 했다. 카리브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스노클링도 처음 즐겨 보고 카약을 타다 뒤집혀 Almost die도 경험했다.
카리브해여, 안녕이다. 너도 꼭 다시 만나야 하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