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시아버님은 57년도에 태어나셨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정확히 40년의 간극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의 근현대사가 느껴진다. 그 사이에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그렇다. 그와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좁혀지지 않는 시간은 때때로 서운함을 낳는다.
처음 서운함을 느낀 건 상견례 자리였다. 양가 어른들은 나와 예비 신랑이 가정을 꾸리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다 당신께서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여자인 내가 담당할 몫이 70퍼센트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와 예비 남편은 집도, 혼수도 함께 준비했다. 앞으로 경제활동도 함께 해나갈 예정이다. 그런데 왜 가정을 꾸리는 몫은 내게 70퍼센트가 주어질까. 기 센 며느리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가정교육 제대로 못 받은 딸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입을 닫았다.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예비 남편의 사촌누나 결혼식 날이었다. 처음으로 친척들께 인사드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인사하고, 급하게 머릿속으로 가계도를 그리고, 나도 같이 찍는 게 맞나 기웃기웃 거리다 머쓱함을 무릅쓰고 가족사진도 찍었다. 곧이어 어색한 식사를 시작했다.얼마 전 내가 코로나를 앓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님께서도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건강에 아침밥 만한 게 없다며 꼭 챙기라고 하셨다. 당신은 원래 아침을 안 드셨는데, 안 먹어볼 버릇하면 아내가 평생 안 차려준다는 직장 동료의 말을 듣고 아침밥을 먹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코로나를 앓은 건 난데, 건강을 위해 앞으로는 마땅히 아침밥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평소에는 살찐다며 안 먹던 치즈볼을 4개나 먹었다. 헛헛한 마음을 치즈볼이 든든하게 채워줬다.
다른 친척 어른께서 아버님께 몸이 불편하시면 일을 좀 줄이라 말씀하셨다. 당신은 아직 나와 남편이 사회초년생이라 당신까지 건사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러니 힘닿는 데까지 일해야 한다는 말씀도 익살스럽게 덧붙이셨다. 그것도 나와 예비 남편의 몫이었을까. 앞으로 우리의 몫이 되는 것일까. 아직까지 공석인 맏며느리 자리가 괜스레 크게 느껴졌다.
결혼이란 부모로부터 정서 및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되뇌는 주문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스스로 작아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누군가는 결혼 후 몇 년 동안 3억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쾌재를 부를 때, 나는 부모님의 지원에 기대지 않는 게 더 큰 성장이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일까. 그 말씀은 내게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아버님 말씀을 달리 들을 수도 있다. 콕 집어 내게 신랑 아침밥을 차려주면 좋겠다고 하시지도 않았고, 변변찮은 당신의 월급으로 알뜰살뜰 살림해 오신 시어머님의 공이 크다며 항상 감사를 표하신 것도 알고 있다. 생활비를 지원해 달라 하신 적도 없고, 오히려 당신 힘닿는 데까지 일할테니 노후는 걱정 말라 당부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왜 당신의 말씀은 항상 무겁게 다가올까. 당신과 나 사이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츄러스, 핫바 그리고 초코라떼
그럼에도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고 당일에 돌연 여행을 취소하는 건 하수다. 직장인에게 결재 완료된 평일 연가는 소중하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막상 길을 떠나니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햇빛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껴졌다.
목욕탕은 <바나나 우유>, 휴게소는 <핫바와 호두과자>, 찜질방은 <식혜>. 각 장소마다 시그니처 음식이 있지만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시중 가격보다 웃돈을 얹어주고 사야 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10만 원이면 잘 수 있는 호텔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50만 원을 웃도는 그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갑을 더 꽁꽁 닫곤 했다.
오늘은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푸드코트로 향했다. 예비 남편이 화장실로 갔을 때를 틈타 내가 평소 먹고 싶었던 어묵 핫바와 츄러스를 사서 차로 후다닥 돌아왔다. 6500원어치의 일탈이었다. 별 게 아닌데 참 짜릿했다. 나라는 인간은 짜릿함의 역치가 낮다.
답지 않게 신상 카페도 찾았다.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그런 카페였다. '파도가 부서진다'는 표현은 누가 처음 사용했을까. 아무리 베어도 베어 지지 않는 물이 부서진다는데, 이치에 안 맞지만, 이만큼이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비유가 또 있을까 싶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파도를 표현했을까 하는 소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오랜만에 여유있게 상념에 잠겼다.
멋진 비유는 모르겠고, 파도가 영락없는 맥주 거품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눈으로 마셨다. 파도 맥주 덕분인지, '5500원'짜리 '다이어트용' 아메리카노 대신 8000원'짜리 '초코라떼'를 주문해서인지 들끓던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안 하던 일을 마음 편히 시도하게 되는 것, 그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것. 이게 바로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나의 알, 나의 세계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지금 한 마리의 새일지도 모른다. 밖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그저 알을 쪼고 있다.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상을 향해 알을 쪼으면서, 한편으로는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타인이 갖은 노력으로 알을 깨고 나와 이미 견고히 구축해 놓은 요새와, 내가 이제 막 짓기 시작하는 성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다못해 주택의 자재도 유행따라다른데, 40년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유독 당신의 말씀이 무거운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 잘하고 싶었던 게 이유 아닐까. 그 때문에 오히려 당신의 뜻을 곡해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고소한 크림을 우물거리며 다짐한다. 당신과 나 사이의 간극을 조금 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 보겠다고.
(+) 휴게소에서 찐 옥수수를 먹을까 한참 고민했다. 그런데 찐 옥수수 하나에 3500원이라니. 서문시장에서는 햇옥수수 두 개를 쪄도 3000원밖에 안 하는데...! 그런데 어묵 핫바와 츄러스를 사서 차로 돌아오는 길에 피실 피실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열받는 일이 생기면 찐 옥수수를 사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오늘은 찐 옥수수만큼 역치가 높아졌다. 소박하게 행복하고, 그 덕에 자주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