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세요 김!!!
외국인 학생들의 식사필수메뉴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 자녀들은 하나같이 대식가에다 편식이 없다. 나는 그런 류의 방송을 볼 때마다 잘 먹는 자녀를 둔 부모가 부럽다. 우리집 아이들은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야채는 웬만하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 어르고 달래서 먹이다 보면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엄마인 나는 평정심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럴 땐 연세 많으신 어른들의 말씀에 위안을 얻곤 한다.
“김이랑 계란 반찬 이 두 개로 애들 다 키웠지 뭐~.”
“애들 크면 다 먹게 되어 있다.”
“필요하면 지가 알아서 다 찾으니 걱정 마라.”
김과 계란은 웬만해선 호불호 없는 식사해결템이다. 급할 때, 아이들이 딱히 밥에 흥미가 없을 때, 나들이 가는데 시간이 없을 때 뚝딱 해 낼 수 있는게 밥에 김 싸기, 계란 주먹밥 등이다.
학교에서도 매일 1학년 반 아이들의 식판을 확인한다. 예전에는 식판 검사를 철저히 하며 모든 반찬 골고루 먹기, 잔반 없는 날 등을 정하여 엄격하게 확인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국의 경우 오히려 염분 때문에 먹이지 말아달라고 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먹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이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나 또한 유년 시절 먹는 것에 흥미가 없었던 아이라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런 나도 초등 중학년,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이 되면서 편식습관이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없어서 못 먹고 무엇이든 적당히 잘 먹는 평범 그 자체의 성인이다. 유년 시절의 편식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기에 나는 특별히 잔반 지도를 하진 않는다.
다만 알레르기 등으로 못 먹는 것이 아닌 경우 나온 반찬을 한 번씩은 먹어보도록 지도한다.
우리 학교는 외국인 학생이 많다. 외국인 학생들은 급식소에서 제공되는 반찬들에 거부감을 표현한다. 억지로 먹으라고 할 순 없기에 차차 스스로 적응해갈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준다.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이나 육식을 하지 않는 아랍계 외국인들이 제일 잘 먹는 것이 ‘김’이다. 다른 음식들은 안 받아도 김은 꼭 받는다. 어떤 외국인 아이는 식판 위에 밥도 없이 김만 달랑 받아오기도 한다. 김은 늘 학교 급식소에 구비되어 있는데 다만 한국인 학생들에겐 제공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을 몰랐던 1학년 아이들의 첫 점심시간, <김사건>이 발생했다.
입학적응기간 동안 아이들은 나와 함께 급식소를 미리 둘러 보았고 급식소에서 지켜야 할 규칙, 급식소 전 손 씻기, 거리 두기, 식판 잡는 법, 선생님이 알려주는 곳에 앉아서 식사하기, 식판 검사 및 정리, 나가는 길까지 연습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급식소 점심식사 첫날, 우리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후 알림장에 간단히 동그라미, 세모로 오늘 하루 생활을 정리하고 번호대로 줄을 서서 급식소로 향했다.
급식소 도착!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외형적 차이가 뚜렷한 외국인 아이들은 자신이 외국인인 것을 말하지 않아도 눈에 띈다. 조리사님께서도 대충 외국인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김을 챙겨 주셨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한국인 친구인 사랑이가 김을 받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모두 배식이 끝나고 식사를 시작하려던 차였다.
갑자기소망이가 나를 찾았다.
“선생님, 왜 사랑이만 김 받아요? 나도 김줘요!”
하며 소망이가 울기 시작했다. 소망이와 사랑이는 쌍둥이 자매다. 쌍둥이라 서로 간에 차별에 예민한 듯 했다.
그러자 주변 친구들도 김을 달라고 성화인 상황이 되었다.
나는 상황을 확인했다.
"사랑아, 김은 외국인 친구들만 받는 거라서 다시 조리사님 드려야 해."
라고 알려준 뒤 다시 조리사님께 가져다 드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랑이가 울기 시작했다.
“왜 뺏어가요? 왜 외국인 친구들만 김 주는 건데요.!!”
이젠 김을 반납한 사랑이가 속상한 나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랑아~ 많이 속상하지? 그런데 우리 학교는 반찬을 잘 못 먹는 외국인 친구들만 먹는 거야. 어떤 외국 친구는 고기를 아예 먹을 수가 없대.”
내가 몇번이나 설명을 거듭한 후에야 사랑이는 진정되었다.
속상한 나머지 밥을 절대 먹지 않겠다던 사랑이는 팔짱을 낀 채 한참을 뾰로통해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풀렸는지 한 숟가락 밥을 뜨더니 맛이 좋은지 금새 기분이 좋아져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사랑이는 적당히 먹고 나더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 음식을 잘 못 먹으니까 김을 받아야 해요. 그렇죠?”
“그래. 맞아. 사랑이 아깐 속상했지만 이해해 줄 수 있지?”
“네!전 이해해 줄 수 있어요!”
사랑이는 씩씩하게 대답하곤 밥이 맛있다며 나에게 엄지척을 해 보였다.
1학기 말에 러시아계 외국인 친구 이리나가 우리반에 새로 왔다. 외모는 완벽한 한국인인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리나는 다른 러시아계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한국어 교실에서 한국어도 배우며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단 하나, 2학기가 되어서도 내가 이리나에게 꼭 챙겨주는 것이 있다. 바로 ‘김’이다.
급식소 조리사님들께서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기억하실 수가 없으니 한국인과 외형적으로 똑같은 이리나는 늘 김 챙김 대상에서 제외가 된다. 조심성 있고 내향적인 성격의 이리나는 늘 식판을 자기 자리에 두고 나를 기다린다. 그러면 내가 ‘김’을 따로 챙겨서 이리나에게 가져다 준다.
이리나에게도 김은 식사해결 필수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