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빅토리아!
이중언어말하기대회 도전기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학교 및 교실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가 원격수업이었다. 작년1학기에는 교육부 권고사항으로 출석 체크 및 하루 한 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있는 학교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학생들이 많았기에 대면 수업이 훨씬 용이했다. 원격수업의 경우 1대 1 피드백을 해 주기 어려웠으며 원격수업 참여율 또한 저조했다. 그런데 그 중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원격수업에 참여했던 학생이 있었다.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우즈베키스탄인으로 3학년 2학기에 한국에 들어 왔다. 부모님께서 먼저 일자리를 잡아 한국에 들어와 계셨기 때문에 몇 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빅토리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뒤늦게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빅토리아는 한국 학교생활에 성실하고 애살있게 참여한다. 본토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빅토리아는 말했다.
“원래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 살았어요. 그래서 할머니 집에서 살 때 한국어 조금 공부했어요.”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며 간단한 인사말이나 단어들을 공부했다는 빅토리아. 그런 애살 덕분인지 한국에 머문 기간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이다.
매해 다문화학생 대상 이중언어말하기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는 지역 대표선발 후 도대표 선발전, 전국대회 출전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코로나로 대회마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동영상으로 예선전이 이루어지고 본선은 교육청에서, 다시 전국대회는 각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장소에서 쌍방향 원격대회가 개최되는 형태였다.
나는 솔직히 그 해, 타지에서 전입해 온 데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학생을 지도해서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의례적으로 학생들에게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중언어말하기대회 참여할 학생있나요?대본을 만들어서 한국어와 자기 나라 말 두 가지를 외워서 발표하는 거랍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빅토리아가 방과 후 카톡으로 대회 참가 희망 의사를 밝혀왔다.
“선생님, 저 하고 싶어요. 엄마 기쁘게 해 주고 싶어요.”
작년 3월, 갓 5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등교가 계속 연기되다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을 병행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우리 학교는 학년군별 격주 등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등교 수업 때 빅토리아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상황을 털어 놓았다.
“선생님, 저 엄마 많이 아파요. 암이에요. 수술해야 되요. 자궁 잘라내요. 제가 병간호해야 해서 원격수업 늦을 수도 있어요.”
“수술 들어갈 때 아빠 울었어요. 나도 울었어요.”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한국이 너무 좋아서 항상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해 나가는 빅토리아였지만 엄마가 암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어린 나이에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시니 빅토리아가 의료진들에게 번역사 역할을 했다. 다행히 빅토리아의 어머니는 수술을 잘 받고 기력을 회복하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 빅토리아는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고 그게 바로 이중언어말하기 대회 수상이었던 것이다.
빅토리아가 원하니 나도 힘을 낼 수 밖에.
빅토리아와 나는 한국에서 겪은 일화나 병동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대회 시나리오를 만들어 나갔다. 한국에 오게 된 배경, 어머니의 병동생활에서 통역사 역할을 했던 경험, 같은 병실에 있었던 환자들,보호자들과의 에피소드 등을 녹여 5분 가량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중언어말하기 대회로 한국어 시나리오를 러시아어 시나리오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는 일은 한국어교실에 강사로 오시는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그런데 이 긴 시나리오를 어떻게 외운담. 그것도 아직 한국어 유창성이 부족한 빅토리아가 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쪼개어 녹음해서 그 파일을 빅토리아가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할 수 있도록 했다. 빅토리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마감날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낸 영상은 다행히 예선을 통과했다. 본선은 교육청에서 실시되었다. 지켜보는 나는 매우 떨렸는데 빅토리아는 연습했던 것만큼 아주 당차게 잘 해내었다.
“선생님, 저 1등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그렇게 되면 너무 기쁠 것 같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대회1등이었다. 세상에!
도대회 1등이라는 쾌거 소식에 학교 선생님들도 빅토리아에게 칭찬 일색이었다. 학교 정문에 현수막이 걸렸다. 빅토리아는 나에게 현수막이 달린 첫 날,현수막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선생님, 이거 봐요. 너무 기뻐서 심장 떨렸어요.엄마한테 보냈어요.엄마 너무 기쁘대요.”
빅토리아는 그렇게 마지막 관문인 비대면 전국이중언어말하기대회에서도 동상(교육부장관표창)을 수상했다. 나보다 낫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전국대회의 발표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나는 빅토리아에게 러시아어를 배웠다. 기다리다 지겨울 때면 빅토리아는 내 수첩에 정성스런 편지도 적었다.
올해, 스승의 날. 2020년 한해를 나와 함께 했던 아이들이 감사 편지를 써서 가지고 왔다.
아이들의 편지에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 중에서도 빅토리아의 편지는 나에게 아주 애틋하다.
오늘도 빅토리아는 나에게 씩씩한 인사를 건넨다.
빅토리아의 앞길에 행복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