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환경에도 불구하고
12세 도서관 첫 방문하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외국인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다른 국적인 학생들을 말한다. 이번에는 어머님이 필리핀이나 베트남 국적인 5학년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5학년 각 학급교사는 정서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두드림성장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에 제약이 있어 자꾸 미뤄지다가 2학기에 2회에 걸쳐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외부 활동을 나갔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가정이라고 해서 모두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반의 다문화 배경 아이들은 가정에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고 있지 못했다. 수진이는 어머니가 격달로 모국에 지내다가 오셨고 아버지는 돌침대만드는 일을 하시는데 자주 타지에 계셨다. 그래서 이웃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현지는 필리핀인 어머님과 한국인 아버지가 이혼하셔서 어머니가 두 아이를 모두 양육하고 계셨다. 어머님은 생계 유지를 위해 늦게까지 일하실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겁이 유난히 많은 현지자매는 수진이네 집에서 늦게까지 놀거나 함께 자곤 했다. 지현이는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부모님께서 성실히 일하셨고 할머니도 함께 지내셔서 돌봄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늦게 한국에 들어와 한국어가 셋 중 가장 서툴렀다.
이 아이들과 첫 번째 야외활동으로 선택한 곳이 도서관과 서점이었다. 수진, 현지, 지현이는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회원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회원증이 있으면 언제든 집 가까운 도서관에 걸어가 책을 읽다가 빌려올 수 있으니 한국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함께 가셔서 회원증을 만들 시간도, 여력도 없으시다는 걸 알기에 이번 기회에 내가 만들 수도 있지 않을 까 싶어 인근 도서관에 문의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제가 대신 보호자 권한으로 아이들 회원증을 만들 순 없을까요?”
학교 학생들 사정을 잘 아시는 사서선생님께서 방법을 안내해 주셨다.
“원래는 반드시 가족 중 보호자가 와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다면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리는 서류 작성하시고 가족 관계 증명서를 가져 와 주세요.”
회원증을 만들 방법은 찾았지만 가족 관계 증명서가 문제였다.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의 어머님들께서는 가족 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질 못하셨다. 결국 그렇게 도서관 회원증 만들기는 서류불충분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지역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최근에 개관한 ‘지혜의 바다’에 방문했다. 아이들은 입이 떡 벌어진 채 여기 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책에 압도당한다’라는걸 아이들도 느끼며 책을 한 권씩 뽑아 읽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점에 들려 각자의 취향을 맞는 책도 골랐다.
두 번 째 야외활동은 겨울이 다가올 쯤이었다. 아이들과 영화 한 편 보러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질 않아 대기 중이었다. 확진자 수가 좀 줄어들고 있는 때
“얘들아 우리 영화 보러 갈래?”
내 말에 수진, 현지, 지현이는 아주 신나고 설레어 했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더니 출입 절차가 아주 까다로워져 있었고 모두 한 자리 씩 띄어 앉아야 했다. 나란히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뭔가 우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서 기념 사진도 찍었다. 영화는 기대보다 더 유쾌했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절로 행복했다. 아이들은 주변 보세가게에서 목도리나 양말 등을 한참을 골라 산 다음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하나씩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아이들의 첫 경험들을 함께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감사했다.
그 아이들이 이제 6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바른 태도와 선한 웃음으로 선생님들의 칭찬을 듣는다.
그 중 한 명은 전교 회장이 되었다.
다 갖춰진 환경에서 모든 걸 누리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즐겁게, 바르게 살아가는 이 아이들이
이 사회의 진짜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성이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사회.
나는 어른으로서 이 아이들에게 늘 많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