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길 Nov 11. 2021

가장 근사하고 확실한 유산

본보기가 되는 어른 '걱정하지 말고 궁금해하세요.'


어떤 프로그램이든 실시간 시청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TV만 틀었다 하면 만화를 보여 달라는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라도 마음껏 보자 남편과 의논하고 TVN 월정액을 신청했다. 신청 당시에는 내가 무척 보고 싶었던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으나 지금은 어떤 드라마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마 범죄 스릴러물이었겠지. 


그 드라마가 끝난 후 다시 TV 시청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시간 날 때 다시 보기로 보는 것이 있다면 <유 퀴즈>다. <유 퀴즈>는 비연예인들의 다채로운 삶을 들여다보며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켜 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유 퀴즈> 파이팅!

     

며칠 전 본 회차의 주제는 ‘수확의 계절’이었다. 초청된 분들 모두 매력적인 삶을 살고 계셨다. 게스트 중 한 분으로 이적 어머니이자 여성학자인 박혜란 작가님이 나왔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던 시기에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내셨다 한다. 아이들이 엄마가 책 내는 것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저희는 엄마가 키운 게 아니고 저희 스스로 컸잖아요."     


였단다.      


"그래. 내가 언제 키웠다냐, 부모가 믿으니 알아서 크더라는 말이지."

     

맞받아친 작가님 말속에 작가님의 확고한 가치관과 독립심, 자존감이 느껴졌다. 또한 작가님은 책을 내기 전부터 자녀 교육에 관한 강연을 다녔으나 책 출간 후 자신의 말이 더 설득력을 발휘하더라고 말씀하셨다. '쓰는 것을 넘어 책의 저자가 되는 삶'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방송에서는 딱히 기술적인 노하우라고 할 것 없는 대화가 이어졌는데     

‘그냥 믿어주라고? 결국 00 집에 00난다는 말이 맞지 뭐~’     

라는 반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때였다. 

유재석이 읽어주는 한 편의 시가 그늘져 있던 내 마음 한 모퉁이로 들어왔고, 나는 눈을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한참 동안 닦아내었다.     


학창 시절 적었다는 이적의 시에는 어머니의 치열했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가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지만 결혼과 자녀 출산 후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다. 여자의 삶에 대한 의문과 투쟁 정신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막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다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아이들에겐 온전한 사랑을 주기 위해 애썼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하며 치열히 살아오셨다. 아이들은 엄마의 그러한 삶을 지켜본다. 그리곤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를 거울 삼아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간다.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다. 나는 아주 어렵게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지만 그 흔한 태교음악이나 태교책도 읽어본 적이 없다. 만삭일 때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재미있어하는 나에게 지인은 “무슨 임신한 애가 그런 책을 보냐”했다. 육아서적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컸다. 그렇지만 내가 엄마로서 절대 내 아이들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책 읽는 거 좋아하잖아~.”

“엄마, 글 적어요? 나는 옆에서 색종이로 만들기 할게~”     


좀 컸다고 6살, 4살이 된 아이들이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주니 고맙다. (아직 4살인 둘째는 조금 더 커야 하겠다.^^....)

가장 좋은 교육은 결국 본보기가 아닐까. 어쩌면 ‘본보기’야말로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하고 확실한 유산 아닐까 싶다.


앞서 걸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바르게 개척해 나가는 자녀들을 상상한다. 

부모의 예상 밖으로 이리저리 튕겨 나가며 살아가기도 하는 자녀들의 삶이 궁금하다.     


‘걱정하지 말고 궁금해하세요.’     


박혜란 작가님의 말씀을 노트에 꼭꼭 눌러 적어보는 새벽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첫 경험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