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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Nov 09. 2021

아이들의 첫 경험을 위해

함께 준비하는 아나바다 장터

10월 중순부터 우리 학교는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하는 것이 아나바다 바자회다.


아이들은  바자회 행사 공지 다음 날부터 물품들을 꾸준히 챙겨 왔다. 아이들마다 물건을 챙겨 오는 방식이나 스케일은 천차만별. 바자회에 낼 물건을 가족들과 의논해서 매일 조금씩 챙겨 오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집에 잔뜩 쌓여있는 새 물건들을 있는 대로 쓸어 담아오는 친구들도 있다. 몇몇 친구들은 들고 올 물건이 없다고도 한다. 그래도 반 친구들이 자꾸만 챙겨 오니 챙겨 올 게 없다던 아이들도 작은 것이라도 챙겨 오려 애썼다. 안 쓰게 된 킥보드까지 끙끙거리며 챙겨 온 승범이는 친구들은 환호성을 받았다. 커다란 바자회 물품 박스에 물건들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났다.     


“알리가 챙겨 온 거 내가 사야지~~~.”

“내가 사고 싶은데.”

“그럼 이건 내 꺼 찜~~~~”     


그렇게 열흘에 걸쳐 기부 물품들은 풍성해졌다.

      


드디어 물건의 가격을 정하고 가격표를 붙이는 날이다. 킥보드부터 파스넷, 색연필, 사인펜, 학용품 세트, 공책, 장난감 총, 열쇠고리, 팝잇, 인형 등 다양한 물품들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더욱이 아이들에겐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활동이 매우 흥미롭고 신선한 작업이다. 다만 1학년 담임이 처음인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협업이다. 고학년이었다면 학생들이 모둠별로 알아서 가격도 정하고 가격표도 만들 수 있겠지만, 1학년의 경우 모든 것을 교사와 함께, 또는 교사가 주도하여 이루어 내야 한다.

나는 물건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가격을 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물품의 가치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데 이를테면...


거의 새 것에 가까운 파스넷이 200원인데 조그마한 팝잇이 400원이란다.

학용품 세트가 400원인데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 전자총 장난감이 300원이란다.

손수 만든 새 스카프 2장이 200원인데 오래되어 보이는 인형이 500원이란다.  

         

아이들과 가격을 다 정한 후 품목명과 가격, 기부자가 적힌 가격표를 인쇄했다. 무엇을 하든지 '교사 주도'는 효율적이지만 ‘함께’와 '배움의 즐거움'에 중점을 두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가격표를 하나씩 받은 후 상자 안에서 보물 찾기를 물건을 찾아내어 나에게 들고 왔다.  끝이 보이지 않던 물품 가격 정하기와 가격표 붙이기는 2교시에 걸친 대장정 끝에 마무리되었다.      


바자회 물품 정리 활동이 끝난 후 아이들은 활동을 하며 들었던 생각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웬만한 일에는 발표하는 법이 없는 서준이가 손을 번쩍 들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물건 가격 정하는 것도 진짜 재미있었고 바자회 때 사고 싶은 물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서준이는 한글 미해득으로 방과 후 나와 공부하는 아이로 대부분의 활동에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는 편이다. 그런 서준이가 물품의 가격을 신중하게 책정하고 가격표의 물품 이름을 꼼꼼히 읽어내며 신나게 활동하는 게 신기했는데 발표마저 완벽해 아이들도 감탄한다.     


“선생님, 서준이 발표하는 거 오랜만에 봐요. 목소리도 엄청 크게 했어요.”    

 

아이들의 칭찬에 서준이는 멋쩍은 웃음을 띄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서준이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신나고 재미있었단다.     


“친구들이 들고 온 물건 보면서 가격 정하니까 재미있었어요.”

“물건 찾아서 가격표 붙이는 거 신났어요.”

“저 꼭 00 이가 들고 온 물건 살 거예요.”

“우리 엄만 맨날 돈 없다고 돈 안 주는데 선생님 어떻게 하죠??”

“저 물건 지금 사고 싶어요. 근데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려요??”   



 8살 아이들과 함께하며 작은 것에도 재미를 찾는 능력에 탄복한다. 아이들에겐 작은 것도 결코 작지 않다. 어른에게는 별 것 아닌 사소한 경험이 8살 아이들에겐 첫 경험이자 인상 깊은 추억과 놀이가 될 수 있다.      


곧 다가올 축제날, 100원-500원의 거금을 쓰며 아이들이 사게 될 물건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하다. 바자회가 끝난 후 기뻐하거나 속상해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들어주느라 분주할 내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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