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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Nov 04. 2021

자신이 세운 테두리를 벗어나기

한글 미해득의 원인


유독 아이들이 많이 아픈 날이 있다. 배 아프다는 아이부터 머리 아픈 아이, 벌레 물렸다는 아이, 상처가 난 아이. 8살 아이들은 미미해 보이는 상처를 나에게 보여준다. 어떤 아이들은 전날에 다쳤던 상처를 보여주며

      

“선생님, 여기 보세요. 저 여기 다쳤어요.”      


하며 자신이 어떻게 하다 다치게 되었는지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창 수업을 하고 있으면 갑자기 교실 앞으로 나와 다 아물어 보이는 상처를 보여 주려 나오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자주 갑작스럽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데 그게 매력이다.     

나는 대체로 나에게 상처를 보여주는 아이에게      


“많이 아파요? 아프겠다. 연고 바를까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상처의 경중을 판단하고 연고만 바를지, 연고와 밴드를 모두 사용할지, 보건실을 갈지, 그도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지를 이야기해 준다.       

1학기 초까진 아프다는 아이들을 그냥 둘 수 없어 보건실로 보냈다. 그러다가 간단한 치료는 교실에서 담임교사인 내가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보건 선생님께 의료용품을 의뢰해서 교실에 구비해 두었다. 그 덕분인지 보건실 가는 아이들이 현저히 줄어든 요즘이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여기요. 계속 불편해요.”


서준이가 검지 손톱 끝에 붙어 있는 가시래기가 자꾸 신경이 쓰였나 보다. 서준이는 모든 활동에 대체적으로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다. 서준이는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한다. 다문화 배경이 있는 아이로 어머님은 베트남분이신데 부모님 모두 퇴근이 늦다.  서준이는 4시 반까지 돌봄교실에 있다가 할머니와 함께 하교하고 나면 누나와 함께 부모님을 기다린다. 4학년인 누나 또한 아직 한글 미해득이라 한글을 꾸준히 가르쳐 줄 사람이 부재하다.  서준이는 차분한 성격에 수학도 곧잘 하지만 한국어의 경우 방과 후 지도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잘 늘지 않는다.      


한글 습득이 느린 이유 중 하나는 배경지식의 부족이다. 통합교과 <가을>에서는 ‘잠자리’를 만들어 술래잡기를 하는 활동이 나오는데, 서준이가 잠자리를 만들다가 대뜸 나에게 와서 물어본다.     


“선생님, 얘 이름이 나... 비...? 뭐였더라...”     


아야어여오요 송에 나오는 낱말 중에서도 우체통, 유모차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서준이의 한글 습득을 방해하는 또 하나는 ‘완벽주의 성향’이다. 정확하진 않아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읽어보고 적어봐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서준이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신체 활동이나 미술 활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늘 ‘모르겠다’, ‘못하겠다’를 달고 산다. 그렇기에 나는 서준이에게 더 구체적이고 단순한 활동 안내를 해 주는 편이다. 그러면 서준이는 느리지만 곧잘 따라온다.


다만 나는 교사로서 서준이가 늘 어떤 틀 안에 갇혀 지내는 것 같아 안쓰럽다. 내가 보는 서준이는 잘하는 것이 많은 아이로 색감도 뛰어나고 그림 실력도 타고났다. 글씨체도 바르고 손재주도 좋다. 그런데 그 ‘완벽주의’라는 게 뭔지 이 아이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아끈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여기요. 계속 불편해요.”     


이번엔 이 작은 손가락의 ‘가시래기’가 서준이의 활동을 방해하고 나섰다.     


“서준아, 불편했겠다. 떼어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이의 손가락 가시래기를 떼어냈다.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앉는 서준이를 본다.



타고난 것이든, 환경으로 인한 것이든 자신이 세운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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