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맥주를 찾아가는 길

어허, 당신 그 맥주잔을 놓을 텐가? 인생 맥주를 만날지도 모르는데?

by ERIN

Q. 애주가 이십니까?

A. 아뇨 그렇게까지 잘 마시거나 하진 않습니다.


Q. 그럼 술자리는요?

A. 저는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제일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술자리 세상에서 제일 좋아합니다.


Q. 그러면 어느 상황에서 술을 잘 마십니까?

A. 대학생 땐 여럿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잘 마셨는데, 요즘은 회사 욕하는 친구랑 둘이 잘 마시고 마음이 헛헛한 날에는 집에 맥주 한 캔 사서 들어와 영화 보며 마십니다.


Q. 주로 맥주 좋아하시나 봅니다?

A. 소주보단 맥주가 좋고, 고소한 술 좋아합니다. 고소한 흑맥주를 사랑합니다.


Q.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뭡니까?

A. 제가 알기론 한국에 안 팔고 스페인에서만 파는 맥주가 있는데, 이름은 모르고 생김새만 압니다. 초록병에 담겨있고, 지역 맥주라고 했는데 달콤한 게 고소하고 술 같지 않은 게 매일 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초록병 초록병 (참이슬 아님)을 외치던 맥주는 최근까지도 이름은 모르고 그냥 초록병 맥주 참 맛있었는데 왜 한국엔 없지? 하며 한국에는 고소하기만 한 맥주가 없어하면서 흑맥주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흑맥주 맛있는데 너무 무겁다. IPA는 너무 가볍고) 그러다가 혹시나 해서 초록병 맥주, 론다 맥주, 스페인 맥주 등을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바로 스페인 론다에서 만난 그라나다 맥주, 알함브라 192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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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으로 표현하자면, 론다엔 다리가 전부지! 라고 생각하며 야경을 기다리며 낯 시간을 헛되이 보내던 멍청한 내게 빛을 선물해 준 맥주이며, 이 맥주를 마시고 여행을 시작한 내게 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이 여행으로 론다의 마지막 날까지 목을 축이던 내게 큰 상을 주고 싶은 그런 맥주이다. 맛을 표현하자고 하면, 고소한데 달콤하고, 달콤한데 고소하며 목으로 쑥- 쑥 잘 넘어간다. 운동 딱 끝나고 시원한 보리차 한 잔 마셨는데 거기다가 달콤하고 더 고소하다면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할까? 아무튼 나 혼자 알고 있던 초록병 맥주는 사실 생각보다 더 유명한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그라나다 여행하면 꼭 먹어야 하는 맥주라고 소개하는 글이 잔뜩이다.


내가 이 맥주를 먹게 된 건 순전히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의 추천 덕분이었다. 맨날 마시던 모히토에서 벗어날까 싶어 '맥주 하나 추천해줄래?'라고 했더니 단번에 이 맥주를 추천해줬다. 그래서 그래 마시지 뭐! 했는데 세상에 그 바텐더가 동서남북 어느 쪽에 있으려나? 지금이라도 그 뱡향을 향해 절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몇 병을 마셨는지도 모를 만큼 많은 (그래 봤자 2-3병이었겠지만..) 맥주를 마시고 누에보 다리를 휘청 휘청 걸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맥도널드에서 감자튀김 2 봉지 사서 오전에 샀던 와인과 함께 숙소 베란다로 나와 한 잔 시원하게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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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론다. 이곳에 사람들이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누에보 다리’다. 협곡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다리, 이 다리 하나만으로도 론다에 오는 이유는 충분했으며, 이 야경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론다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을 잘 볼 수 있다는 호텔은 하루에 숙박비만 몇십만 원. 당연히 나는 그럴 돈이 없었고(그리고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냥 대충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서 숙소 하나를 찾아 예약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이번 생의 숙소 복은 여기서 다 쓴 것인가 싶을 정도로 멋진 숙소를 찾았다.

베란다에서 바로 론다의 누에보 다리가 정면으로 보이던 이곳은 정말 내게 보석과도 같은 곳이었다. 혼자 와인에 감자튀김을 먹으며 이 다리를 봤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으며,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여행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감이 높았다. (물론 취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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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을 별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고 나서는 여행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개개인마다 다를 테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바로 여행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을 경험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만 있었다면 나는 내 인생 맥주를 경험해 보지 못했을 테고,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 앞에서 와인에 맥도널드 감자튀김이라는 이상한 조화를 맛보지도 못했을 테니 얼마나 행복한 일들인가? 물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게 항상 행복하고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을거다. 그치만 비행기를 놓쳤던 일이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기회가 되었던 것 같고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게 오늘의 나라면 지금 당장 비행기표를 사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 맥주를 찾을 수 있는데 뭔들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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