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절대 사람을 믿지 말 것

소설

by 봉봉주세용

어느 날부터 창수삼촌이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 소리로 다투는 경우가 생겼다. 예전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강낫또씨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인 것 같았다.


집안 물건에 빨간색 압류 딱지가 붙기 시작하고 살림이 하나둘 없어지면서 강낫또씨는 상황의 심각성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믿고 맡겼던 창수삼촌이 회사 재산을 횡령하고 회사 물량을 담보로 큰돈을 대출받아 해외로 도망간 것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습하고자 했으나 그 규모가 예상을 훨씬 웃돌아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와 동업을 했던 김사장님이라 불리던 아저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고 아버지는 폐인이 되었다.


그나마 어머니는 어떻게든 상황을 추슬러 보고자 이리저리 알아보고 뛰어다녔는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창수삼촌이라 불리던 남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경찰에서도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




그 사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살던 강낫또씨는 지방에 있는 소도시로 이사를 가야 했다. 빚쟁이들은 귀신같이 강낫또씨의 집을 찾아냈고 괴롭힘이 시작되면 다시 짐을 싸서 더 은밀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는 빚쟁이가 찾아오지 않았을 즈음 강낫또씨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다. 항상 주위에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던 외향적인 강낫또씨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소심하고 어두운 표정의 강낫또씨만 남게 되었다.


강낫또씨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친구들과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강낫또씨는 친구 사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게 편해진 것이다. 아버지는 창수삼촌 사건 이후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일 늦은 오후에 일어나 집에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강낫또씨가 집에 돌아올 즈음이면 만취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다정다감하던 아버지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했고 강낫또씨가 집에 돌아오면 1-2시간씩 강낫또씨를 앉혀두고 연설을 시작했다. 강낫또씨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핵심은 알고 있었다.


절대 사람을 믿지 말 것.


강낫또씨는 그런 아버지의 말이 지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사무치도록 이해되었다. 예전 당당하고 다정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웠다. 그리고 가장 믿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중심을 잡으며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어머니가 가장 오랫동안 한 일은 마트에서 물건을 채우는 일이었다.


가끔 명절이나 대목에 학생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는데 강낫또씨는 어머니의 소개로 마트에 가서 함께 일을 했다. 커다란 트럭으로 끊임없이 물건이 들어왔는데 창고에서 까대기 작업을 하고 제품을 정리했다.


보통 한 시간 정도 하면 온몸이 근육통으로 비명을 질렀는데 강낫또씨의 어머니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나갔다. 쉬는 시간에 강낫또씨는 어머니를 따라 창고 뒤편에 있는 휴게실에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연두색 일회용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지폈다. 담배에 불이 붙자 어머니는 담배를 쭈욱 빨아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입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강낫또씨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 담배 펴?”


강낫또씨가 물었다.


“그럼. 이거라도 없으면 여기서 어떻게 버티니?”


어머니는 담배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며 얘기했다.


“아. 난 엄마가 담배 태우는지 몰랐네.”


“여기서 일하면서 배운 거야. 담배 안 피우면 쉬는 시간도 없거든.”


어머니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담배를 빨고 신발로 비벼서 불을 껐다.


강낫또씨는 담배를 태우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담배라도 피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강낫또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다시 가족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부해서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폐인이 된 아버지를 보며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에게는 공부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렇게 해서 강낫또씨는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교 중 한 곳에 입학하게 되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올라온 서울. 어릴 적에는 압구정에 있는 넓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20살의 강낫또씨는 같은 서울이지만 느낌은 많이 다른 신림동에 있는 1.2평 좁은 고시원 방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방은 좁았고 제대로 발을 펼 수도 없었지만 강낫또씨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좁긴 했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아버지의 술주정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강낫또씨면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