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편
수능시험이 끝나고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술집이었는데 기본 안주가 세개 깔렸다. 친구들과 알탕 하나를 시키고 소주를 마셨다. 술자리 내내 웃고 떠들다 보니 새벽1시가 넘었다. 다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술집을 나섰다. 꽤 쌀쌀한 날씨였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가로등 불빛이 빙빙 돌았다.
세상도 돌아가는 것 같고 나도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천장이 계속 돌고 있었다.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었다. 이런 게 취한 느낌이구나 싶으면서 이래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구나 싶었다. 그날 내가 마신 소주양은 3잔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음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입생 환영회 한다고 마시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반갑다고 마시고
기숙사 방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마시고
미팅 나가서 분위기 띄운다고 마시고
향우회에서 고향 사람 만나서 마시고
금요일에는 불금이니까 마시고
주말에는 개콘 보면서 마시고
월요일에는 한 주 시작했으니까 마시고
신입생 때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가 즐거웠다.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그 자리가 재미있었다. 하루는 새벽 3시까지 과음을 하고 1교시 수업에 들어갔다가 수업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그 전에 이미 수차례 토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올릴 것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위액이 나왔다. 그 동안 너무 생각없이 술을 마셨구나 싶었다.
강의실로 돌아와서 며칠동안 술을 마셨는지 달력을 보며 체크해 봤다.
17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 것이었다.
어떤 이유로 술을 마셨는지 생각해 봤는데 하루하루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술자리였다. 술자리는 빠지지 않는 대신 술 마시는 양을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동아리는 두 군데에 가입했다. 역도부와 서예부. 역도부에서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서예부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술자리가 많았다. 저녁마다 동아리에서 술자리가 있었는데 신입생은 필참하는 분위기였다.
술자리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니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이곳에서 마시다가 잠시 나가서 저곳에서 마시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저녁도 많았다. 술을 마시며 때로는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실수도 했고 때로는 필름이 끊겨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술자리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아쉬웠다. 이른 저녁부터 술을 마셔도 금세 자정이 넘어갔고 종종 새벽이 되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술자리에서 시간이 빨리 갔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회식을 할 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던지.
광현이는 대학교 때 만난 역도부 동기다. 이 친구도 나처럼 동아리를 2개 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마다 동아리 술자리가 겹쳐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했었다. 술자리에서 내가 없어지면 광현이가 나를 찾으러 왔고 광현이가 없어지면 내가 광현이를 찾으러 갔다. 우리는 술자리라는 전선에서 전우애와 우정을 키웠다.
광현이와 자주 가는 단골 술집이 있었다. 학교 후문에 있는 조그만 삼치집이었는데 구운 삼치 한 마리가 3천원이었다. 사장님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는데 우리는 그 술집에 가면 조금만 주전자에 양파 1개를 썰어서 넣어 달라고 했다. 그 주전자에 소주 2병을 넣으면 우리만의 양주(양파소주)가 완성되었다.
따뜻하게 구워 진 삼치에 시원한 양주 한잔.
그렇게 수 많은 술자리와 함께 시간이 흘렀다.
광현아. 건강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