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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맥주와 홍주

음주 편

by 봉봉주세용

영국의 음주 문화는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집에 가면 기본 안주가 몇 가지 나오고 탕이나 요리 같은 걸 시켜서 술과 함께 먹는다. 당연히 술은 앉아서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술을 마실 때 보통 서서 마신다. 펍(Pub)이라는 곳에 가서 맥주 한잔을 시켜 놓고 수다를 떨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며 술을 마신다. 안주는 특별한 것이 없는데 우리나라에 파는 감자스낵 작은 것을 먹거나 보통은 안주 없이 그냥 마신다.


영국에 잠시 머물 때 저녁에 수영을 하고 끝나면 근처에 있는 펍에 가서 기네스 1파인트(Pint=567ml)를 마셨다. 뽀얀 거품과 기네스 특유의 흑맥주 빛깔의 조화로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동네에 있는 펍은 시골에 있는 사랑방 느낌이었다. 낡고 오래된 간판이 걸려있고 건물도 오래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가 지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명씩 펍에 들어오고 맥주를 한잔씩 시킨다.


어느 순간 펍은 사람들로 가득차고 말소리와 웃음이 넘치게 된다.


맥주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한잔 두잔 하다 보면 어느 새 문 닫을 시간이 된다. 보통 자정 전에 영업을 종료하는데 30분 전에 종을 쳐서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맥주 사랑이 시작되었다. 길을 걷다가 펍이 나오면 들어가서 맥주를 한잔하며 펍의 분위기를 느꼈다. 골목 골목에 있는 펍을 찾아다녔고 도심에 있는 펍도 자주 갔다. 같은 맥주 브랜드라도 펍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르고 분위기가 다양해 재미있었다.


TV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어 축구, 크리켓, 럭비 등을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도 있고 어떤 펍은 조용하게 대화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어떤 펍은 동네 노래방 같은 느낌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펍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맥주 맛은 하나같이 최고였다.





군대에 있을 때 한번은 후임이 휴가 복귀를 할 때 진도 홍주를 가지고 와서 선물로 줬다. 어머니가 직접 담근 술이라고 했는데 진한 빨강색이었다. 시중에 파는 홍주는 맑은 선홍색인데 직접 담갔다고 하는 진한 빨강색의 홍주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휴가 때 군대 동기들과 선물로 받은 홍주를 마셨다. 도수가 40도 가까이 되는 것 같았는데 달콤하면서도 끝 맛이 좋았다. 순식간에 홍주를 다 마셨는데 다음 날 숙취로 하루 종일 고생했다. 술이 깨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그때 선물로 받았던 홍주의 진한 빨강색 빛깔은 참 예뻤다. 하지만 아직도 홍주를 생각하면 숙취로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술을 참 많이 마셨다. 대학시절에는 술을 마시다가 밤을 새는 경우가 잦았다. 지치지도 않고 1차, 2차, 3차로 자리를 옮기며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술을 마시는 순간에는 다음 날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그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마셨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할 때 가볍게 한잔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차에서 마무리한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을 생각하고 다음 날 업무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고민없이, 아무 걱정없이 술을 마시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지금은 술자리가 길어지면 피곤하고 다음 날 걱정이 먼저 든다. 술을 많이 마셔도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신 것 같다. 이 정도 마셨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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