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편
사진작가 김영갑이 사랑했던 용눈이 오름
그는 제주에 20여년 간 머무르며 용눈이 오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루게릭 병에 걸려 투병하는 와중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오픈했다. 두모악에서 본인이 찍은 용눈이 오름 사진을 전시했다. 지금은 두모악이 유명해졌고 사람들이 용눈이 오름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용눈이 오름은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오름이었다. 김영갑은 왜 그렇게 용눈이 오름을 사랑했는지 궁금했다.
나도 종종 용눈이 오름에 간다. 용눈이 오름은 높지 않지만 올라갈 때 가끔 바람이 세게 분다. 분명 용눈이 오름 밑은 바람이 없는데 중간쯤 올라가면 바람이 세게 불 때가 있다. 심지어 비바람이 함께 내리고 불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다. 용눈이 오름은 올라가다 보면 말이 보인다. 말은 유유자적하며 느릿느릿 풀을 뜯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몽골의 초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세게 불던 날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
마치 언제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고요하다. 멀리 보면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그 뒤로 끝없이 오름이 펼쳐져 있다. 정상에 서서 그 자리에서 한바퀴 돌면서 풍경을 본다.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정상에서 내려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더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마음속에 담고 싶다. 용눈이 오름은 화려한 오름이 아니다. 투박하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쓸쓸하면서도 강인한 제주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영갑은 용눈이 오름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용눈이 오름 바로 앞에는 다랑쉬 오름이 있다. 용눈이 오름이 투박하다면 다랑쉬 오름은 매끈한 느낌이다. 높이 380미터 정도의 다랑쉬 오름은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며 분화구는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패어 있다. 분화구는 둘레 1500미터, 깊이 115미터인데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하다고 한다.
몇 년 전 추석 연휴에 용눈이 오름을 갔다가 다랑쉬 오름에 갔다. 용눈이 오름은 자주 갔었는데 다랑쉬 오름은 처음이었다. 용눈이 오름에서 다랑쉬 오름이 보이는데 어떤 오름 인지 궁금했었다.
다랑쉬 오름 정상에 가서 둘레길을 걷다 보니 조그만 집 같은 것이 있었다. 이런 곳에 왜 이런 집을 지어 났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집에서 문을 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다랑쉬 오름 산불 지킴이라고 소개했는데 성함이 “고승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들어와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마침 올라가느라 흘렸던 땀이 식으며 추워지던 참이었다. 조그만 초소안에서 고승사 할아버지는 달달한 커피 믹스를 맛있게 타 주었다. 커피를 마시며 할아버지 인생 얘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 사업 얘기부터 암 수술하고 초소에서 근무하게 된 것까지.
할아버지의 긴 얘기를 듣기에 커피 한잔으로는 부족했다. 커피 한잔을 더 마시며 즐겁게 얘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유도도 했었고 양복일을 하며 돈을 크게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암에 걸려 수술을 했고 의사도 생존할 확률이 적을 것이라 얘기했는데 할아버지는 깨어났고 건강을 다시 찾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암 수술 후 살아있는 하루 하루를 인생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했다.
초소 안에는 할아버지가 자필로 옮겨 쓴 용혜원 시인의 “커피와 인생” 시가 걸려있다.
커피와 인생 / 용혜원
한 잔의 커피도
우리들의 인생과 같다
아무런 의미를 붙이지 않으면
그냥 한 잔의 물과 같이
의미가 없지만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사랑과 우정 속에
의미를 가지면
그 한 잔의 작은 의미보다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따라
의미가 다를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갖고
저마다 자기의 삶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에
낭만과 사랑을
담고 마실 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도 역시
낭만과 사랑이 있으리라
지금도 고승사 할아버지는 다랑쉬 오름을 지키고 있을까? 다음에 다랑쉬 오름에 가면 할아버지에게 커피 한잔을 타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