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편
대학교 3학년 때 스타벅스에 처음 가 보게 되었다. 영등포역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선배가 저녁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커피라고 하면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200원짜리 커피를 생각했다. 선배는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를 시켰고 나도 똑같은 걸로 시켰다.
커피가 나왔는데 컵이 너무 큰 것 같았다. 그 많은 커피를 어떻게 다 마시냐고 했는데 선배는 마시다 보면 부족할 거라고 했다.
쓴 맛의 새까만 커피를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몰랐다.
억지로라도 마셔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선배는 설탕 한봉지를 넣어서 마시라고 했다. 그래도 쓴 맛은 여전했다. 한봉지를 더 넣었더니 마실만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커피를 많이 마셨다. 군대에서 마신 커피는 달달한 커피믹스 커피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커피 믹스를 하나 타서 마셨다. 아침 상황회의를 마치고 또 한잔 마셨다. 점심 먹고 식당에서 한잔 더 마셨다. 오후에는 졸리니까 잠 깨려고 한잔 마셨다. 저녁에는 중대원들과 면담을 하며 한잔 마셨다.
하루에 최소 5잔씩 달달한 커피를 마셨다.
힘든 군대시절 달달한 커피가 있었기 때문에 한번씩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영국에 갔다. 런던 중심에 있는 어학원 옆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2시간 수업을 하고 20분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가 휴식 시간이면 항상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나도 몇 번 따라가서 커피를 마셨는데 예전에 영등포에서 선배와 마셨던 것처럼 설탕 두 봉지를 넣어서 마셨다.
그런데 커피가 너무 달게 느껴졌다. 나중에 한 봉지로 줄여봤는데 여전히 달았다. 그래서 아예 설탕을 넣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그제야 입맛에 맞았다. 그리고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커피 맛이 느껴졌다.
이것이 커피 맛이구나 싶었다.
런던 중심에 토트넘 코트 로드 역이 있다. 그 역 근처에 2층 건물의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그곳에 자주 갔다.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있었다. 그라함이라는 할아버지였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그 스타벅스에서 만나 2시간씩 영어로 대화를 했다.
수업료는 따뜻한 라떼 한잔이었다.
토트넘 코트 로드 역 옆에 퀸의 We will rock you 뮤지컬을 공연하던 공연장이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공연을 하지 않고 교회가 되었다. 힐송처치 라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그라함을 만났다. 옆 자리에 앉았던 그라함이 1주일에 한번씩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수업료는 스타벅스 커피 한잔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라함과 마셨던 스타벅스 커피 한잔. 지금도 그때 마셨던 커피 맛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