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편
테니스를 배울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대학교 때 학군단 옆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는데 동기들이 거기서 테니스를 쳤다. 몇 번 가르쳐 준다고 했었는데 거절했다.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식은 상태였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도 부대에 테니스장이 있었다. 연대장님이(지금은 육군 참모총장으로 진급했다) 자주 테니스를 쳤는데 우리 중대에서 테니스장을 관리했다. 연대장님과 함께 테니스를 치는 참모들이 테니스를 가르쳐줄 테니 같이 치자고 했는데 완곡히 거절했다. 그때도 역시 테니스에 관심이 없었다.
회사에 테니스에 빠져 있던 선배님이 있었다. J과장님은 테니스 얘기를 자주 해줬는데 테니스가 얼마나 매력 있는 운동인지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곤 했다. 계속 테니스 얘기를 듣다 보니 테니스를 제대로 배워서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슨을 받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테니스장을 검색해 보고 한군데씩 찾아가 봤다. 세 군데 째 테니스 코트를 방문했을 때 테니스장 입구에 레슨 환영이라는 글과 함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바로 전화를 해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코치님이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코트로 나오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산 아래 있는 테니스 코트에 도착해 보니 흰 머리를 뒤로 넘겨 고무줄로 묶고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느낌있는 할아버지 코치님과 그렇게 하루 20분씩 레슨을 시작했다. 코치님은 자세와 스텝을 가장 먼저 가르쳐 줬고 그 후 그립 잡는 법을 알려줬는데 ‘이스턴 그립’으로 가르쳐 줬다. ‘이스턴 그립’은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 중 한 명인 샘프러스가 사용했던 그립인데 밀어치는 느낌으로 포핸드를 치는 그립이다. 예전에는 주로 쓰던 그립이었지만 요즘 테니스에서는 잘 쓰지 않는 그립이다.
코치님이 던져주는 볼을 치면서 포핸드, 백핸드, 발리 등을 배웠는데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코치님과 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랠리를 할 때는 무아지경 상태가 되었는데 집중이 잘 될 때는 20번이 넘게 랠리가 이어졌다. 레슨 시간은 짧았지만 운동량이 상당했다. 레슨이 끝나면 쉴 시간도 없이 내가 쳤던 공을 빠르게 주워 담으며 다음 레슨을 받는 분이 어떻게 공을 치는지 구경했다.
할아버지 코치님께 5개월 동안 새벽 시간에 배우고 레슨 시간을 퇴근 후 저녁 시간으로 옮겨 집 바로 옆에 있는 코트의 젊은 코치님께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두 번째 코치님은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한 일명 선출인데 30대 초반으로 젊었다. 코치님은 볼 치는 것을 보더니, 그립을 ‘웨스턴 그립’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랠리만 하는 것은 ‘이스턴 그립’으로 문제가 없지만,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웨스턴 그립’으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이라 했다.
‘웨스턴 그립’은 포핸드를 할 때 강력한 탑스핀을 구사할 수 있다. 대신 몸 앞쪽에서 볼을 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테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그립을 바꾸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웨스턴 그립’에 익숙해지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바꾼 그립에 익숙해지니 볼을 칠 때 짜릿한 손맛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빠져들었다. 테니스를 잘 치고 싶었다. 테니스책을 찾아보고 기사를 검색해 보고 사람들과 만나면 테니스 얘기를 하고 있었다.
‘웨스턴 그립’을 가르쳐 줬던 코치님은 인기가 많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20분씩 레슨으로 빡빡하게 스케줄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 근처에 있는 1면짜리 코트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멀리 있는 큰 테니스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도 코치님을 따라가서 배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집에서 테니스장이 너무 멀었다. 코치님은 자신보다 더 잘 가르치는 분이라며 다른 코치님을 소개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