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동네 편의점 슈퍼스타

소설

by 봉봉주세용

최근 9호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그의 동네에는 편의점이 꽤 많았다. 주택가인 그 동네에 한 블럭에만 편의점이 6곳이 있었다. 그는 그 중 GX25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편의점 주위에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학원이 몰려 있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내려와 라면, 김밥, 과자 등 간식을 사 먹었다.


그는 편의점의 슈퍼스타였다.


특히 남학생들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형처럼 따랐다. 더벅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다. 전형적인 고시생 스타일의 그는 동생같은 고등학생 동생들에게 편하게 말을 놨다.


“너 오늘도 라면이냐? 맨날 라면만 먹지 말고 김밥도 먹어.”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너 요즘 학원 빼 먹는거 아니지?”

“그때 얘기했던 여자친구는 잘 사귀고 있어?”


그는 처음보는 학생에게도 반말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은 그의 반말을 좋아했고 어느 순간 친형에게 얘기하듯이 주저리 주저리 본인의 얘기를 그에게 시작했다. 가끔은 학원 수업이 없는 주말에 그를 찾아오는 학생도 있었다.


친구나 선생님에게 얘기하지 못하는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기 위해서 였다. 그는 손님이 없을 때 편의점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자기 나름의 해법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의 고민은 대부분 연애 얘기였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지 2년째인 그는 31살 김민수씨이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다. 푸른색 제복을 입고 나쁜 놈들을 잡는 경찰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을 적는 칸은 경찰로 채워졌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 투캅스에 나오는 경찰을 꿈꿨다. 비리경찰 안성기와 원칙을 지키는 신참 박중훈. 나중에 박중훈 역시 능글맞은 경찰이 되었지만 원칙을 지키는 경찰이었다. 그도 그런 멋있는 경찰이 되어 악당을 잡고 싶었다.


김민수씨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들의 꿈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민수씨의 부모님은 그를 어릴 적부터 태권도장에 다니게 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은 없었지만 꾸준히 한 덕에 중학교 때 태권도부에 들어오라는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김민수씨 부모님의 반대로 태권도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 운동부에 들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민수씨는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태권도는 꾸준히 했고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성적에 맞춰 부산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경제학과였는데 학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태권도부 동아리에 가입해서 미친듯이 운동을 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저녁마다 동아리에서 운동을 했는데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매일 토할 듯이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발차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이 없었다.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는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대회가 있을 때 마다 그는 시합에 출전하지 못했고 응원을 했다.




동기는 6명이었는데 남자가 5명, 여자가 1명이었다. 유일한 여자 동기인 이미영씨는 김민수씨와 키가 비슷했다. 키 174센치미터면 남자 키로는 보통이지만 여자 키로는 큰 편이었다. 미영씨는 재수를 해서 그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는데 그들은 동기라 말을 놓기로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큰 자동차 정비소를 하는 사장님이었다. 기부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지역사회에서 신망을 받는 분이었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았고 동아리 생활을 열심히 했다. 영문학과인 그녀는 초등학교 때 뉴질랜드에서 2년동안 어학연수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과 친구들보다 학과 공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김민수씨는 신입생 필수 과목인 대학영어 수업을 미영씨와 같이 들었는데 그때 얘기를 많이 했다. 가끔 동아리 운동이 없는 날에는 둘이 학교 후문에 있는 돈가스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생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학교 밥집에서 밥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갔지만 그녀는 돈가스집에서 밥 먹는 것을 좋아했다. 김민수씨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돈가스집에 자주 가다보니 돈가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미영씨는 인기가 많았다. 서구적인 몸매에 얼굴이 작았던 그녀는 바비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에가 남자들은 끊임없이 대쉬를 했다. 과에서는 물론이고 동아리 동아리 선배들도 미영씨에게 호감을 표했는데 한 선배는 그녀의 집까지 따라가서 대쉬를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남자를 모두 거절했다.


이미영씨는 걸을 때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고 걷는 버릇이 있었다. 한번은 김민수씨가 물었다.


“미영아. 너는 왜 항상 니 손을 잡고 걸어가니?”


미영씨는 새침하게 대답했다.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거야.”


민수씨는 미영씨의 대답을 듣고 슬그머니 오른손으로 미영씨의 왼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그럼 내가 잡아주면 되겠네”


그렇게 해서 김민수씨와 이미영씨는 사귀기 시작했다.


김민수씨는 특별히 잘생긴 것이 아니었고 잘난 것도 없었지만 그녀의 얘기를 잘 들어줬다. 그녀가 얘기할 때 맞장구를 치며 크게 웃어줬고 그녀도 그가 하는 얘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둘은 일년동안 항상 붙어다녔다. 태권도부에서 운동을 같이 했고 수업이 마치면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그녀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한번씩 생맥주를 마셨다. 크게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민수씨와 미영씨는 그 생활이 좋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김민수씨는 대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당시에는 의경으로 군대를 다녀오면 경찰 시험을 볼 때 가산점이 있었다. 그는 경찰이 꿈이었기 때문에 의경을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다. 누구나 가는 군대였지만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했고 싸움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군대에서 그런 것은 아무 소용 없었다. 좁은 방에서의 내무 생활은 답답했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에 돌아오면 악마같은 선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임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고 자존심이라는 것은 짖밟힐 대로 짖밟혔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악몽같은 시간도 조금씩 지나갔다. 그가 의경 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정도 되었을 때는 그 생활에 익숙해졌고 일년정도 지났을 때는 악마같은 선임들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의경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수경이 되었을 때 틈틈이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순 없었지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그가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을 알고 있던 친한 경찰들은 그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충고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만만한 직업이 아니라고. 그도 의경 생활을 하며 옆에서 본 경찰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취객에게 시달리고 범죄 현장에서 피를 보고,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는 일이 경찰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그가 어릴 적 생각했던 경찰의 모습은 푸른 제복을 입고 악당을 소탕하는 영웅의 모습이었는데 실제 경찰의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민원에 시달렸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김민수씨는 의경 생활을 하며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어릴 적 갖고 있던 경찰에 대한 로망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경찰을 해 보고 싶었다. 그는 전역 후 본격적으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다. 1년 정도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시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경쟁자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고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는 서울에 있는 노량진 고시촌에 가서 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경찰공무원 시험에 올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모님께 1년 동안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얘기하고 지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