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량진 생활과 눈물의 졸업식

소설

by 봉봉주세용

처음 노량진에 올라갔을 때 김민수씨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무언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에서 혼자 공부할 때는 외로웠다. 하지만 노량진에서는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험 합격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는 누우면 방이 꽉 차는 1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작은 방인데도 한달에 월세가 40만원이었다. 그나마 보증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고시원에 누우면 옆 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방음이 전혀 안 되었기 때문에 옆 방에서 글을 쓰는 소리도 들렸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는 이어폰으로 듣는 것이 나름의 룰이었다. 좁고 불편한 방이었지만 그는 행복했다. 경찰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했고 곧 시험에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과목 중 체력 테스트는 항상 만점이었다. 하지만 필기 시험에서 매번 커트라인 근처에서 점수가 조금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더 이상 부모님께 지원을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김민수씨는 노량진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1년, 노량진에서 1년동안 공부하며 시험을 봤는데도 안 됐으니 경찰이 그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은 학교에 복학을 해서 학업을 마치기로 했다.


그의 나이는 이미 20대 중반이었다. 여자친구였던 미영씨는 그가 노량진에서 공부할 때 헤어졌다. 꽤 긴 시간동안 만났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미영씨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가 힘들어 할 때 그녀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며 손을 잡아주었다.


가끔 그녀는 그의 책에 5만원짜리 지폐 한장과 편지를 써서 꽂아두었다.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맛있는 저녁을 사 먹으라는 그녀의 배려였다. 미영씨의 배려가 고맙기도 했지만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졌다. 미영씨는 졸업 전 부산에 있는 은행에 공채로 취직했다. 그녀는 영문학과 였지만 학교 생활을 하며 금융권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뒀고 차근차근 스펙을 쌓았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취업을 했다.


그 해 그녀가 은행에 취직했을 때 공채 경쟁률이 200대 1이라고 했다. 그녀는 서류와 인적성 시험 외에도 합숙면접, 토론면접, 영어면접, 최종면접을 거쳐 합격했다. 민수씨는 그녀가 그렇게 능력자인줄 몰랐다. 예쁘고 착하기만 한 여자친구로 생각했는데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위축이 되었다.


그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회식이 잦아졌고 그에게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부럽기도 했고 열등감이 생겼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녹록치 않구나 싶기도 했고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본인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고 미영씨는 점점 지쳐갔다.


그는 미영씨의 손을 놓기로 했다. 그녀는 노량진에 올라와서 그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며 그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경찰공무원 시험에도 떨어진 그는 부산에 내려왔을 때 한동안 창피해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김민수씨가 복학을 했을 때 학교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가 신입생으로 학교를 다닐 때는 뭔가 흥이 있는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즐겼고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며 학교 생활을 했다. 김민수씨도 신입생 때 공부보다는 태권도 동아리 활동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가 복학을 하고 보니 학교 분위기는 삭막하게 변해있었다.


학생들은 학과 공부 뿐 아니라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한 시험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다. 경제가 어려웠고 그만큼 취업문은 더 좁아져 있었다. 학점을 높이고 스펙을 쌓고 해외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각종 공모전 및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겨우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민수씨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신입생 때 활동했던 태권도 동아리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가 신입생 때 함께 했던 동기 중 3명이 동아리에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동아리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중 유성욱씨는 동아리 회장을 하고 있었다.


성욱씨는 동기들 중에서도 친하게 지냈는데 서글서글하면서도 사람들을 잘 챙겨 어디를 가든 인기가 있었다. 민수씨가 학교 생활 적응에 힘들어 할 때 성욱씨는 옆에서 민수씨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덕분에 민수씨는 동아리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다가 힘들 때 동아리에 가서 후배들과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과에서 사귄 친구들과 소주를 한잔씩 하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복학 후 민수씨는 학과공부에 집중했다. 신입생 때 낮은 학점을 받았는데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더 노력했다. 2년동안 경찰 공무원 시험을 하며 몸에 배인 공부습관은 큰 도움이 되었다. 민수씨가 공부했던 경찰공무원 시험에 비해 학과공부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졸업 때 까지 거의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고 학교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는 4학년 1학기부터 서울에 있는 대기업 공채에 지원했다. 하지만 서류 통과도 쉽게 되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의 비공대 전공 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실감났다.


50군데가 넘는 회사에 원서를 썼는데 서류 통과를 한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서류 통과를 한 3곳 중 2곳은 1차 면접에서 떨어졌고 1곳은 최종면접까지 갔다. 최종면접까지 간 회사는 대학이나 스펙을 보지 않고 블라인드 전형을 시행한 곳이었는데 최종면접에서는 모든 스펙을 오픈한 면접이었다. 최종면접 경쟁률은 3대1 이었는데 김민수씨는 결국 떨어졌다.


김민수씨는 그날 많이 울었다. 최종면접까지 올라가며 이번에는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최종면접 준비를 할 때 집에서 부모님은 그의 눈치를 보며 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가 최종면접을 보러 갈 때 어머니는 민수씨의 손을 꼭 잡으며 잘 하고 오라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5만원짜리 지폐 2장을 건네주며 면접 후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용돈을 줬다.


동아리 후배들은 이번에 꼭 합격할 거라고 응원을 해 줬다. 그는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1년 전에 건설사에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성욱씨가 그를 위로해 줬다. 성욱씨는 부산에 있는 조그만 건설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성욱씨도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1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원서를 쓰고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민수씨는 그날 처음으로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갔다. 성욱씨가 민수씨를 위로해 준다고 데려간 그곳에서 민수씨는 정신없이 양주를 마셨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민수씨는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혼자 해운대에 있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갔다. 집에 있기도 눈치가 보였고 학교에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마침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가 재개봉하여 상영중이었다. 그는 10분 후 시작하는 러브레터 영화 티켓을 사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영화가 슬프기도 했고 그의 상황이 서글프기도 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행히 그가 앉은 자리는 영화관 위쪽 구석 자리여서 주위에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왔을 때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취업을 한 친구들은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시간인데 민수씨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한참 앉아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들이 주는 술을 다 받아 마시고 쓰러졌을 때, 동아리에서 발차기를 연습하고 토하도록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던 모습, 미영씨와 손잡고 교정을 걷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을 때,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노량진에서 생활할 때, 복학하고 학점 딴다고 도서관에서 밤새며 공부하던 때.


대학시절 그 모습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민수씨는 대학을 졸업했고 공식적으로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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