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민수씨는 졸업 후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친구도 만나기 싫었고 아무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새벽에 밤새도록 영화를 보고 인터넷의 세계의 빠져들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일하러 가시기 전 새벽에 방 불을 끄고 잠을 잤다. 부모님과 최대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가족사진은 민수씨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부모님은 젊은 모습이었다.
민수씨는 가슴이 아팠다.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옷을 입고 동네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덥수룩한 수염을 1회용 면도기로 밀었는데 잘 깎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두껍게 자랐기 때문이다. 면도를 하고 턱을 만져보니 보드라웠다. 그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면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수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한참을 생각했다. 나이는 이미 28살이었다. 대기업에 취직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스펙은 평범했다.
지방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토익은 830점, 자격증은 운전면허증과 워드프로세서 1급, 태권도 3단 단증이 전부였다. 남들 다 간다는 어학연수와 공모전 경험도 없었다.
대신 학점은 만점에 가까웠는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쓴 2년의 공백이 컸다. 그는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학점을 높이기 위해 학과 공부에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졌다.
김민수씨는 마지막으로 경찰공무원 시험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딱 1년 동안 일하면서 돈을 벌고 2년 동안 노량진에서 다시 경찰공무원 시험에 몰입하기로 했다.
김민수씨는 동네에 있는 직업소개소에 새벽마다 나갔다. 거기서 그날 그날 일용직 노동일을 배정받아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했다. 하루 일당은 7만원이었는데 1만5천원은 소개 비용으로 직업소개소에서 갖고 갔다.
하루에 5만5천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일 끝나고 함께 일을 했던 아저씨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하면 4만원이 남았다. 워낙 일이 힘들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민수씨가 투입되는 현장은 다양했다.
일반적인 공사 현장에 투입되어 벽돌을 나르는 일이 많았고 때로는 이삿짐 센터에 투입되어 이삿짐을 나르기도 했다. 한번은 지하철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신호 보는 일을 했는데 도로가 너무 뜨거워서 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두달동안 일해서 민수씨가 모은 돈은 160만원이었다.
직업소개소에서 매일 일을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올 때는 일이 없었고 사람이 몰리면 누군가는 일을 쉬어야 했다. 그나마 민수씨는 젊고 몸이 건강해서 소장님이 일을 많이 준 편이었다. 1년동안 돈을 모아도 노량진에서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 같았다. 민수씨는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가 두번째로 찾은 일은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택배를 상하차하는 일이었다. 물류창고는 민수씨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저녁 8시부터 일을 시작하여 아침까지 10시간 - 12시간 동안 일이 이어졌다.
보통은 2인 1조로 일을 하고 운이 좋으면 3인 1조로 편성되어 14톤 트럭에 있는 택배를 하차하거나 실어야 했다. 14톤 트럭 한대를 택배 박스로 채웠는데 일이 끝나면 온몸이 후들거렸고 손을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트럭 한대를 보내고 5분 정도 쉬다보면 바로 다음 트럭이 들어왔다. 민수씨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했고 체력에 자신있었지만 택배 상하차 일은 매일 매일이 체력의 극한을 테스트했다. 보통은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알바를 왔는데 하루나 이틀정도 지나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꾸준히 보이는 알바생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아저씨가 많았고 가끔은 유럽에서 온 건장한 아저씨도 있었다.
물류창고 일이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알바를 하겠다고 온 사람은 그냥 쓰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물류창고에서 한달동안 일을 했는데 매일 출근할 때 온 몸에 파스를 붙여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근육통으로 쑤셨고 움직이기가 어려워 출근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에 주섬주섬 츄리닝을 입고 까만 모자를 눌러쓰고 출근을 했다.
민수씨는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면서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를 수차례 보게 되었다. 한번은 20킬로 쌀 포대가 가득 실린 트럭이 들어왔는데 하차를 하다가 함께 일하던 20대 초반의 체대생이 허리를 잡고 쓰러졌다.
원래 약한 디스크가 있었는데 무리를 하다보니 터져버린 것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그 학생은 힘이 좋았지만 요령이 없어 쌀을 들다가 디스크가 터져 큰 수술을 두차례 받고 한동안 하체가 마비되어 고생했다고 한다.
상하차를 하다가 그렇게 허리를 다치는 경우는 다반사라고 했다. 한번은 책이 대량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무게가 상당했다. 함께 일하던 필리핀 아저씨가 그 책 박스를 들다가 손가락이 박스 사이에 끼여 복합 골절이 된 경우도 있었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어딘가가 부러지고 다치는 것이었다.
더 위험한 것은 탈수가 왔을 때인데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 질 때가 있다. 그때 바로 물을 마시고 쉬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질 수가 있다. 실제로 그런 탈수 증세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상하차를 끝내고 쉬엄쉬엄 하려고 해도 작업반장이 감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민수씨는 그렇게 일을 하다가는 몸이 먼저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일을 찾아 보기로 했다. 민수씨가 상하차일을 하며 한달동안 번 돈은 280만원이었다.
세번째로 찾은 일은 편의점 알바였다.
동네에 있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했는데 한달에 80만원을 받았다. 야간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틈틈이 경찰공무원 시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면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민수씨는 그 시간에 조금씩 책을 봤다.
편의점 알바로 돈은 크게 벌지 못했지만 공사장 일이나 물류창고 일보다는 훨씬 수월했고 몸이 편했다. 무엇보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민수씨는 만족스러웠다. 가끔 알바 시간에 동네에 살고 있는 민수씨 친구들이 놀러왔다.
친구들은 늦은 저녁 시간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술을 먹고 집에 가다가 민수씨를 보러왔다. 민수씨는 친구들과 편의점 야외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친구들은 맥주를 한잔씩 더 했고 민수씨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 오면 얼른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계산을 해 주고 나왔다.
가끔 들르는 친구들이 처음에는 귀찮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기다려졌다. 특히 태권도부 친구인 성욱씨가 편의점에 자주 왔는데 성욱씨는 올 때 마다 편의점에서 파는 맛있는 과자나 냉동식품을 사서 민수씨가 먹을 수 있도록 해 줬다.
성욱씨는 대학교 때 부터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 두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동갑인 여자친구는 나이가 있어 빨리 결혼하기를 원했고 성욱씨는 좀 더 기반을 잡고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여자친구 집에서 워낙 강하게 밀어붙여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성욱씨는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지만 집에서 도움을 주기로 하여 결혼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민수씨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성욱씨가 부러웠고 성욱씨는 여자친구가 없고 솔로인 민수씨가 부럽다고 했다. 민수씨 친구들 중 결혼을 하는 것은 성욱씨가 처음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비싼 집값과 생활비 부담으로 점점 결혼 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결혼을 앞둔 성욱씨를 보며 민수씨는 언제쯤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취직을 하고 돈을 모으고 최소한 집이 있어야 하는데.
김민수씨는 그렇게 1년동안 쉬지않고 일을 해서 1100만원을 모았고 그 중 100만원은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렸다.
처음 계획은 1년 동안 일을 하고 2년 동안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것 이었는데 1000만원으로는 2년 동안 노량진에서 생활하는 게 불가능했다.
고시원 월세는 그가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몇 년전에 비해 이미 많이 올라 있었다. 제일 싼 방 월세가 한달에 50만원이었고 학원비와 교재, 밥값을 계산하면 빡빡하게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틈틈이 공부해 둔 것도 있었기 때문에 김민수씨는 1년안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시험을 봤을 때 커트라인 보다 조금 낮은 점수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 열심히 하면 경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민수씨는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다시 노량진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