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
다음 날 “뱅글장수” 영화를 봤는데 나를 비롯해 오른쪽, 왼쪽, 왼쪽 옆에 있는 사람까지 사이 좋게 잠을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졸지 않으려고 했는데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푹 자고 나왔다. 영화 설명은 실제 내용과 전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화였던 것이다.
(뱅글은 팔찌 같은 것인데 주인공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뱅글을 팔러 다닌다는 소소한 내용) 나중에 회사 후배에게 들어보니 원래 영화제에 나오는 영화는 팜플렛 설명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 후배는 뱅글장수 다음 영화를 봤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극장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극장에서 푹 자고 나왔는데 배에서 긴급하게 신호를 보내왔다. 전날 전주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은 결과였다. 옆에 있는 CGV 화장실로 뛰어갔다. 모든 칸이 만석이었는데 장애인 화장실은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었다.
예전에도 공항에서 급할 때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안에서 문을 닫으면 밖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도 “현재 사용중입니다” 라는 멘트가 나오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화장실 안에서 안경 쓴 청년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당황하고 그 분도 당황해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정신을 차린 청년이 앉은 자세로 급하게 중요한 부위를 가리며 “안에 사람 있잖아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얼마나 화가 났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 쳐서 나갔는데 바로 옆이 여자화장실 입구였다. 서 있던 여자분들이 “저기 무슨 일이야” 라며 웅성웅성 대며 화장실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문을 닫아주러 화장실로 돌아갔는데 이미 그 청년은 주춤주춤 문 쪽으로 다가와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 청년은 다급하게 “빨리 문 닫으세요!” 라고 소리 질렀다. 움찔해서 바로 화장실 문을 닫고 2층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도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잠시 변기에 앉아 생각했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과라도 하려고 다시 1층 화장실로 내려갔는데 이미 장애인 화장실은 비어 있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그 분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미안했다고 꼭 사과하고 싶다.
편안한 휴식시간을 선물해 주었던 “뱅글장수” 영화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역시 꽤 막혔다.(5시간) 전주영화제에 다녀오는데 왕복 12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년에도 아마 전주영화제에 갈 것 같다. 그때는 또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