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주영화제의 추억 - 1

영화 편

by 봉봉주세용

전주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본사에서 한달 간 트레이닝 받고 바로 전주에 배치 되었다. 전북, 제주 지역 대형마트를 관리하는 영업사원이었다.


회사는 대형마트에 생활용품을 납품했는데 당시 대형마트가 전성기 때라 매장에 회사 제품을 관리하는 판촉 여사님들이 꽤 있었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며 일을 배우던 나는 가끔 힘이 들 때 전주 중심 거리를 걸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하루는 매장에서 불량 제품으로 큰 컴플레인이 걸렸다. 직접 고객 집으로 가서 제품을 수거하고 사과를 했다. 본사에 고객센터가 있었지만 가끔은 그렇게 영업사원이 직접 나서야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도 한다. 그날은 꽤 지쳤었다. 그래서 일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전주 객사 거리를 걸었다.


걷다 보니 마침 그때가 전주 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지금은 전주 영화제에 사람들이 많이 가고 거리가 축제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당시에는 영화제 현수막이 거리에 걸려있는 정도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냥 영화제가 하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객사 거리에서 조금 들어가니 넓은 공터에 가건물이 세워졌고(지금 CGV자리) 가건물 2층에 공소파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푹신푹신한 공소파에 누웠다. 1층에서 “관객과 감독의 대화” 세션이 진행 중이었는데 질문하고 대답하는 게 들렸다.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보았는데 구름이 군데군데 있고 하늘이 청명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조각이 솜처럼 붙어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파란 하늘의 청명함, 그리고 시원한 커피 맛이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이었다. 영화제 기간이었지만 영화는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 후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서 5년 정도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했다. 매년 전주영화제 기간이 되면 전주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뿐이었다. 실제로 가려고 하면 왜 그렇게 멀어 보이던지.


하지만 2018년에는 당일치기로라도 가볍게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즉흥적인 마음으로 5월5일 아침 7시에 서울에서 전주로 출발했다. 평소 3시간이면 서울에서 전주까지 갈 수 있는데 그날은 황금연휴 시작이라 차가 많이 막혔다. 결국 오후 2시에 전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7시간 동안 꼬박 운전을 하고 바로 영화제가 열리는 객사로 갔다. 영화제에 왔으니 영화를 먼저 보자고 생각했는데 당일 예매로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영화제 영화는
사전 예매로 대부분 매진되고
일부 남아있는 영화도 당일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극장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배우 권해효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CGV 극장에 왔다. 예쁜 브롬톤 자전거를 접어서 들고 올라가는데 꽤 멋있어 보였다.


계획은 당일치기로 해서 전주에 왔는데 영화를 못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았다. 당시 극장에서 하고 있던 마동석이 나오는 팔씨름 영화 “챔피언”을 보고 올라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를 7시간 걸려 내려온 전주에서 보고 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영화제 영화를 한편 보고 올라가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뱅글장수”였다. 인도 영화인데 영화제 책자에 아래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었다.


뱅글 장수와 그의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건 마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가부장적인 인도 남부 마을을 배경으로 남편은 남모르는 욕망과 연애를 지켜갈 방법을 궁리하는데...


뭔가 야한 느낌의 묘한 영화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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